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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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이후 발표한 시

팅, 펴질 것만 같은 外 1편

也獸 2008. 9. 28. 20:48

팅, 펴질 것만 같은
                                       윤관영


복사물에 오롯한 이 머리카락은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다
머리카락인데 머리카락이 아니다
면과 면, 쪽과 페이지를
연결하는
가운데 허구렁의 이음줄
말 15마리, 낙타 2마리, 소 6마리, 양 50마리 이상은 가지지 않는 자급자족의 카자흐 族과
문명의 발달로 자멸한 에페소스의 운명을
잇고 있는 머리카락,
복사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 당위와 실존 사이
실존과 생존 사이
동구 몰락, 배동바지 이후, 나는 나다
내가 아니다
면과 면, 쪽과 쪽, 페이지와 페이퍼
사이
그 깊은 허구렁에서
이음줄이 이상하게 선명해진다
바스러지는 자음과 모음을 당기는 말굽자석 같은,  
시조새 같은 그것이 날 포획해,
쥐라기로 백악기로
날아오른다
이음줄이 올라간다

까옥 깍
까마귀 같은,











앵두와 나


앵두와 나는 행복했다
앞니에 터지는 앵두는 달았다
씨를 내뱉는 호흡이 간지러웠다
새빨간 피부는 매끄럽게 반짝였다
따서 왼손에 올려놓을 새도 없이
따먹는 앵두는  
윗입술을 빠는 듯했으며
젖꼭지를 혀끝에 문 듯했다
앵두와 다다귀다다귀 좋았다
갑자기,
문득,
느닷없는,
단옷날의 번개와 소나기처럼
앵두가 앵두나무가 되자
가지가 앵두로 시뻘겋게 불타는 듯했다
애채는 두서 없었고
나무는 담벼락 한 쪽으로 물러났다
내가 가도 내가 와도
그예 담벼락이 되어 버렸다
울 줄도 모르던―
앵두는 반짝이는 빨간 눈물이 되어
사기 주발 위에 서정이 되었다
그네는
―『시와상상』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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