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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가방/박정남

也獸 2008. 12. 9. 20:46

가방

       박정남

 

내 가방의 벌어진 지퍼를

남편이 닫는다

내 가방의 밑바닥에

남편의 손이 가 닿는다

남편의 손은 늘 방심인 나를

잠그기에 바쁘다

아파트 문을 따고

가방에 키를 넣고 이제는 다 왔으니

닫지 않았다고 변명을 한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을

이렇게 열려서 맞이하는데

남편은 속속들이 잠그는 연습부터 시킨다

내 가방은 밖에서 종일

내가 긴장할수록 꼭꼭 닫혀 지냈다

그 어둔 속을 누가 보면 안 되었다

집에 다 왔는데

그래도 남편은 안심이 안 되는지

견물생심이라며

나를 잠근다 나는 속으로

그럼 어디 가서 편안하게 열려 보나?

하고, 가방에게 묻는다

 

 박정남의 이 시는 부부의 일상을 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남편, 즉 남자 일반의 행실과 철학에 대해 던지는 자문이다. 집에서도 자신을 잠가야 하는 통제와 억압에 대해 ‘그럼 어디 가서 편안하게 열려 보나?’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묻고 있다. 자탄과 자조가 배어 있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남편은 그를 ‘이렇게 열려서 맞이하는’ 것마저 잠그기에 열중한다.

 일전에 동창에 갔을 때 여자 동창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오십이 되면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허나 남편의 그 말은 거짓말이기 십상이다. 오십 전의 생을 통제하고 억압했던 사람이 오십이 되었다고 그것을 용인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말은 오십 정도 되면 남자들이 보아주는 매력에서 벗어난다는 속물적 인식이 바탕이 된 것이기에 자신의 말을 뒤집기 여반장일 뿐 아니라 막무가내일 것이 뻔하다. 이 지점이 남자인 것이 겁나는 지점이다.

 이른 등단에 이어, 지금에서야 쏟아내는 시의 관능적 폭발을 공히 문정희와 박정남에게서 본다. 왜 그럴까? 이는 남자(여기서는 남편이겠지만)의 억압을 이겨낼 만한 시점(‘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안 되는 말로 막무가내 닫기를 요구하는 것을 이기는 시점)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보여진다. 남자가 닫는 것을 요구하는 강요를 되받아칠 만한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또 그 연륜이 갖는 관능은 그 만큼 깊이가 있고 또 속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의심을 비껴간다. 무엇보다 시 자체에 대해 직접적인 관여와 억압이 될 수 있는 남편의 존재를 넘어서기에 관능적인 시의 탄생과 <가방>과 같은 직접적인 시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다. 박정남 시의 변방에 위치하는 시 같지만 그의 처지와 적실성을 드러낸 시로 이만 한 시가 없다. 나에게 묻는다. ‘닫기만 하다 고대로 죽으면 그것은 참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물론 가방의 남편은 그만 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잠그겠지만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주는 독도 있겠다. 그것은 화자가 걸어온 세월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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