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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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연착/이명

也獸 2011. 1. 12. 11:47

 

연착

     이명

 

 

기차가 온다.

늦게 온 주제에

꽤나 시끄럽다.

흰 수염 같은 연기.

가방을 들고

기차로 간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늦게는 오지마는

언젠간 오고마는 기차처럼.

당신도 그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꼬깃꼬깃 접은 표를

늙은 역장에게 건네준다.

기차가 왔다.

늦게 온 주제에

결국 오긴 왔다며

거드름 피우며 서있다.

 

*이명의 많은 시 중에 가장 와닿는다. 그가 쓰는 과격(?)한 시편도 이 시의 서정성으로 인해 믿음이 간다. 실험은 계속된 실험으로 여전히 진행 중일 수 있고, 해체는 계속 분해해 나가겠지만 그것은 완성된, 혹은 좋은 시편이 이어주는 '중'일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이 어떻게 쓰는가는 내가 염려하고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고, 나는 다만 나를 견인하는 시편에는, 감염력 강한 시편에는 좋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집 <루's> 출간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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