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조용한 일/김사인

也獸 2007. 10. 12. 18:18

조용한 일
_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시는 어느 자리를 건드리는가?

  그것은 아마도 독자(시인, 혹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지점을 가리킬 때 감동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무렵에 벤치에 앉아본 경험이 있다.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바장이기도 하고, 덤 깊이 몸을 구부려 벤치에 몸을 더 밀착시킨 적도 있다. 개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옥수수를 떼어먹으면서 소주를 한잔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물론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져 침묵을 가로지르기도 했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나'라는 인식이다. 생은 또 그럴 때가 있다. 심심하고, 고독하고, 그렇다고 다른 대안은 없고, 그런 정황이 싫어서 인터넷 바둑을 두자니, 그건 심심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넘기는 싫고,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는 대목이 다가오는데, 실로 나를 치는 것은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라는 지점이 나를 친다. 옥수수 줄기 우듬지를 보고나 있었지 귀가 점점 커지기나 했었지, 그래서 그냥 술이나 한 잔 했지 고맙다는 지점에 이르지는 못했다.

  단아한 한편의 시가 던지는 파문이 크다. 그래서 김사인이지 싶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