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

미리 읽는 시월의 고요(윤관영)/ 글 : 송종규

也獸 2008. 6. 30. 17:54

 

 원서문학관의 정원에는 한창 봄이 와 있었고 그는 반바지에 맨발이었다. 그날 싱크대 앞에 서서 익숙하게 설거지하던, 영락없는 문학관의 안주인 같은 윤관영 시인을 처음 만났었다. 맨발이나, 설거지하는 남자의 익숙한 몸동작은 조금 낯설기도 하고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두 번 대구에서 그를 만났는데 맨발처럼, 그는 늘 솔직했다. 그리고 명쾌하고 분명했다. 그를 말할 때 솔직, 명쾌, 발랄이란 낱말을 빼먹을 수 없고 그날 말들 위에는 그의 맨발이 가지런히 얹히는 걸 어쩔 수 없다. 간혹, 사무적인 일이나 하선암의 꽃소식 같은 안부를 전해올 때도 그는 한결같이 경쾌하고 살가웠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능력 하나를 다시 그의 맨발 위에 포갤 수 있다. 사실 윤관영 시인의 용기가 부럽다는 걸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맨발에 관한 괜한 시비로 빙 둘러온 셈이다. 오랜 여행 끝에 다만 하선암(충북 단양)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눌러 앉았다는 사람이 윤관영 시인이다. 누구나 꿈구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과감하게 저지른 것이다. 문명의 소요와 도시의 풍요를 포기할 수 있는 현실 인식은 우직하고 정직한 예술가적 치열함에서 출발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용기가 한 없이 부럽다는 것을 고백한다.

 

 시방/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에 둘러싸여/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자연이라는 현실 위에 도시적 상상력이 가미된 만만치 않은 그의 첫 시집 원고에서 퍼 온 시 '시월의 고요'의 일부분이다. 자연의 한 컷에 시인의 감각이 이입되는 순간을 그는 아름답고 장엄한 흑백필름 속에 차곡차곡 쟁여 넣었다.

 윤관영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하선암, 시월의 고요, 그리고 정직하고 치열한 삶의 기록들을 얹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드린다.

<시안 여름호 줌렌즈>

-송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