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

퍼머 유감

也獸 2008. 7. 1. 11:20
 


 퍼머 유감



 먼 길을 에돌아 온 느낌이다.

 단양에 살러 와서 초기에 정착을 못하고(3년 간 애쓰긴 했다), (벌이가 안 되니까) 제천에 나가서 학원을 하고 기원을 하고 그러다 10년 차가 되어서야 다시 단양으로 들어왔다.

 뭐 별다른 생계 수단은 없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의논한 결과 임대노래방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논의 끝에 하게 되었다. 시인이라는 게 꾀만 많고 이기적인 존재라 많은 벌이는 안 될지 모르지만 저녁에 잠깐하면 된다는 그 사실이 매력으로 끌렸다. 물론 낮에 산에도 가고 볼일도 보고 일도 갈 수 있다는 것까지. 이제 실패하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고, 하하. 그러나 내공이 많이 쌓여서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노래방 주인은 주변과의 관계 개선이 우선이라 이제 주변의 모든 업소를 이용해야 했다. 미용실 먼저 바꿨다. 논술학원을 할 때는 머리를 자주 잘라야 했지만 학부모 중 누군가가 머리를 잘 자르는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가서 꼭 잘랐다. 전속 미용사라고나 할까, 그랬다. 단양에 와서, 그것도 노래방 근처의 미용실 - 준 미용실 -에서 처음 머리를 잘랐다. 도려 달라고 했더니 머리를 팽이처럼 깎아놔서 서울 가는 것이 영 저어되었다. 그렇다고 즉시 다른 곳에서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퍼머를 했다.

 그런데 커트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퍼머는 그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었다. 모자를 쓰고 다니는 수밖에. 게다가 6개월치 커트 비용 셈치고 삼 만원이나 들였다.

 출판기념회는 다가오고, 게다가 준 미용실 원장은 ‘윤관영을 사랑하는 자발적 주민 모임’의 주 요리사였다. 할 수 없이 깔끔하게 시내에서 자르고 왔다. 내가 잘하는 것이 웃는 것! 서운해도 어쩌랴. 나도 힘든 걸. 더 웃고 더 잘해주고, 뭐 그렇다. 노래방 영업이사를 자처하는 그인 것을.

 지금도 내 머리는 잘라내서 곱슬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상태다. 만족스럽다. 파마를 하는 마음은 여럿일 수 있으나 이제 튀는 언행을 피해가야겠다는 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형국도 있음이 날 살게 하는 듯 싶기도 하다.

 파마머리 보러 오세요,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