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

<시와반시 가을서가>

也獸 2008. 9. 3. 20:00

 

 

체 치면서 

 

                        윤관영

 


평범하기로 쌀이 어떨까
아님,
덜 까진 현미는
턱 허니 가슴팍 열어젖힌 보리
깔끌한 게
자꾸 뜨물 게워 내는 보리는 어떨까
제 살 터진 뗑그런 콩
고소한 내 콩은 또 어때
잡것,
온전히 속살 터져 핏물 내는 팥
차라리 팥, 팥은 어때

아서라, 내
밥에 쌀눈을 보지 못하는 이들
혼쭐 한번 내주겠다
떡판 뒤집듯 뒤집어 보겠다
오진 꿈 꾸었노라
쌀도 현미도 보리도 좋지만
콩이야 팥이야 말도 많지만
차라리 내 찹쌀이 될란다
날 쳐
날 녹여
남 끌어안는 찹쌀이 될란다
애꿎은 체만 탁탁 쳐대는 시절에
오오

 

 

 청국장 맛 같은 어눌한 시어를 찾아 쓰면서도 그의 묘사력은 세련되어 있으며 시안이 깊다. 시인은 상상력이나 직관력을 기르는데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는 첫시집이지만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것은 자신의 시어를 구수하게 때론 날카롭게 벼리고 발효시키기 위해 많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싹은 들어간 데서/몸의 약한 고리에서 터져나온다/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는 줄기/어떻게 흔적도 없이 구멍에서 솟는가"(<감자> 부분), "물고기 배를 때린 바람의 등이 보인다"(<풍역을 보면>부분).

  또한 화려한 묘사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유가 깊어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그의 눈길이 머무는 것은 거의 무심히 흘리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고구마, 감자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감싸 안을 줄 아는 정겨움이 있다. - 정숙(시인)

 

 

  "지금 저 예쁨은/꽃나무가 들이 버티고 있는 절정,/절정엔 이후가 급박하다" 이 싯귀는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절정 이후를 알기에 시인은 지금 자신이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윤관영 시인이 사는 충북 단양군 단성면 대잠리에 간 적이 있다. 시인축구단 '글발'의 시인들과 함께였다. 빼어난 절경의 하선암 부근이다. 그는 꽤 솜씨 좋은 목수 같았다. 그가 손수 만든 계곡 옆 정자에서 별빛과 물소리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었다. 시집에서 보듯 그가 살아온 길이 녹록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제 강박의 길 지나 오돌오돌한 직선과 직각의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지향점이 궁극에는 말랑말랑한 곡선의 길이 아닐까. 그가 바라보는 시적 진실이 보편적 서정의 양식을 띠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국수가 에부수수 끓는 밤, 가살가살 피어오르는 안개, 응달마을 황씨아저씨네, 같은 멋진 표현들이 시집 곳곳에서 그의 탄탄한 시력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집 마당에는 예쁜 우리말들이 반짝거리고 있는가 보다. '글발'의 홈피에 간간이 기고하는 시평을 보며 대단한 독서량과 녹록지 않은 필력을 짐작은 했었다. 야들야들한 도시의 무척추들과는 다른 노동의 땀냄새가 배어 간강하고 따뜻한 언어를 계속 길어 올릴 것이라 확신한다. - 김지헌(시인)

 

 

  페루 인디언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전 낚싯대와 대화를 한다. 너는 바다에 나가면 고기를 많이 잡게 될 거야. 이 말을 통해 그 낚싯대는 고기를 잘 잡는 낚싯대가 된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다. 그들이 쓰는 무기는 날이 선 톱이 아니라 아우성이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댄다. 그러면 나무속에 깃들어 있던 혼이 빠져나가면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진다.

  윤관영 시인의 첫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은 고기를 잡기 전 자신의 낚시대와 나눈 길고 긴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한 전심전력의 아우성이다. 그는 3일 밤낮이 아니라 15년의 세월동안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댔다. 얼마나 미련스러운가? 하지만 봐라! 저 낚시대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잘 잡는 낚시대가 되었다. 나무가 쿵, 하고 비로소 쓰러졌다. 이 얼마나 예쁘고 감동적인가! -고영민(시인) 


 계간 <시와반시>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