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

오철수 시인의 내 시 읽기/빈집을 헐면서

也獸 2008. 10. 24. 22:15

  빈집을 헐면서
        -윤관영

 

    빈집은 못부터 삭는다
    묵밭이 된 마당
    키를 넘는 명아줏대
    덜컹거리는 문짝이라도 잡은 못은
    녹이 덜하다 반쯤 박혔을 땐
    제 몸 휘게 하는 무게를 매달지 못하면
    대가리, 아니 모가지 먼저 삭는 법
    이미 나무가 된 명아주 밑동은
    낫질이 잘 안 먹는다
    적막한 빈집에도 세월의 흔적은
    저 못처럼, 서까래에 대가리까지 푹
    박혀 살면
    온전할 수 있었을까
    안경알에 떨어진 땀을 면장갑으로 닦으며
    장도리를 옆으로 눕혀
    구부려 구부려 못을 뽑는다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에서

 


  사람이 살지 않아 "묵밭이 된 마당/ 키를 넘는 명아줏대"가 들어서면 습도 조절이 안 되어 "빈집은 못부터 삭는다". 빈집을 헐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못이 부실하게 박혔던 부분은 쉽게 헐어지고, 쉽게 헐어지지 않던 부분은 나무 속의 못이 아직 새살처럼 박혀 있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못이 그렇게 집을 서 있게 했던 것임을 상기한다. 그런데 더 새삼스러운 것은 "덜컹거리는 문짝이라도 잡은 못은/ 녹이 덜하다"는 사실이다. �까? 이에 대해 시인은 "반쯤 박혔을 땐/ 제 몸 휘게 하는 무게를 매달지 못하면/ 대가리, 아니 모가지 먼저 삭는 법"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덜컹거리더라도 문과 못의 긴장이 서로의 몸 속에 박혀 공진한다면 덜 녹슨다는 뜻일 게다. 못은 제 몸을 휘게 할 정도의 무게로 각성하고, 문은 그 각성을 몸에 새기며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터, 그 긴장은 세월이 쉽게 먹지 못한다. 서로 다른 존재의 결합일지라도 깊게 박혀 서로의 살이 되는 것이다. 제가 뿌리내릴 곳이 아닌 마당에 이미 깊게 뿌린 박은 명아주도 그 긴장으로 하여 "낫질이 잘 안 먹는다". 그렇게 세상의 이치는 비슷하다. 그러니 "저 못처럼, 서까래에 대가리까지 푹/ 박혀 살면/ 온전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왜 하지 않겠는가. 시를 읽다가 갑자기 내 모가지가 만져지는 까닭은, 나이 오십 먹도록 어디 한 곳에 푹 박히지 못하고 반쯤 걸친 채 '자유' 타령을 해온 나에게 독하게 하는 말 같아서다. "장도리를 옆으로 눕혀/ 구부려 구부려 못을" 뽑으면서 반성하라고!

-글/오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