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칸나/문정희

也獸 2009. 2. 28. 11:04

칸나

-아직 괜찮은 미인의 어조로

                                      문정희

 

나 오늘 칸나를 사러가네

연애를 해도 외로워

이제 연애도 싫어

 

사랑은 없고 소문만 무성한 시대

정사도 정사도 가뭇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하늘 아래 살아있는 심장을 만나러가네

 

사랑은 꼭 신고한 사람과 해야 하나

사랑은 서류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려다

태양의 뿔 하나를 사러가네

 

칸나가 핏빛인 것은 우연인가

땅 위의 모든 것이 참 의미심장하다네

 

붓다는 오직 비었다고 했고

아소는 사랑의 죄를 대신 졌지

 

나는 오늘 칸나를 사러가네

연애를 해도 외로워

이제 연애도 싫어

 

 요즘은 ‘사랑은 없고 소문만 무성한 시대’다.

 그렇기에 ‘연애를 해도 외’롭고 ‘이제 연애도 싫’다는 자탄이 가능하다. 사랑은 가증스럽게도 ‘사랑은 꼭 신고한 사람과 해야’ 한다고 틀 지어져 있고, 그런 가운데의 정사는 가뭇없는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 소문만 무성한 시대는 ‘참사랑’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참사랑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 참사랑은 ‘칸나’다. 칸나는 ‘태양의 뿔’이고 또한 ‘하늘 아래 살아있는 심장’이다. 그런 참사랑은 핏빛을 띨 수밖에 없고 그런 ‘하늘 아래 살아있는 심장’은 드문 것이어서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붓다와 아소는 그런 화자의 진술로만 가는 길을 균형잡는 장치이고, ‘연애를 해도 외로워/이제 연애도 싫’다는 화자의 진술은 참연애를 그리는 반어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자신을 ‘아직 괜찬은 미인’이라 여기는 존재여야 한다.

(윤관영/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