也獸 2009. 5. 25. 17:43

그 자리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한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어미닭이 부리로부터 (들었다 놓았다 쉴 새 없던 그 눈동자) 목덜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부터 가슴털로부터 알에 맞춤하게 제 몸무게를 들어 올렸을 두 다리로부터 끝없이 옴직거렸을 미주알 그래서 짧았을 꽁지, 그래서 제 몸이 반원을 정확히 그렸을 둥우리로부터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2009 현대시학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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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짧은 졸시 한 편이 있다. 제목은 보온방석이다. 내용은 이렇다. 공중화장실 변기/ 방금 전 누가 앉았던 자리인지 아직 따듯하다/ 남겨놓고 간 흔적/ 한 사람의 온기가/ 오늘, 추운 영하의 날씨/내 벗고 앉은 몸/따듯한 보온방석이 된다

윤관영 시인은 그 자리에서 보온 방석이 아닌 그녀 속의 둥우리, 그리고 그 둥우리에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고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을 떠올린다.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놓았는지 암탉의 옴직거리는 미주알도, 닳아 짧아진 꽁지도 다 보인다. 큰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는 그녀와 알을 품는 암탉이 너무도 리얼하게 오버랩이 된다. 아니, 암탉이 아니라 그녀 속에 둥우리를 틀고 앉아 있는 윤관영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럽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한때를 보내며, 갓 나은 달걀을 가슴털로 맞춤하게 덮어 품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달걀은 부화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디보자! 품고 있던 달걀을 내려다보니 피가 묻어있다. 윤관영 시인은 다름 아닌 피 묻은 달걀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두었던 그 자리에 다시 가보는 것은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우리가 다시 품어야 할 피 묻은 달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품어 그 자리가 따듯한 보온방석도 되고 부화가 되어 노란 햇병아리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윤관영의 시인의 시는 생것의 맛이 있어 좋다. 이 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갓 낳은 날달걀을 이빨로 톡톡 깨고 빨아먹고 난 뒤의 말긋한 개운함이 있다. 토종닭이 낳은 달걀처럼 그 느낌이 묵직하다. 온기도 있고 피도 묻어난다. 꼬기오~ 이런 달걀은 백발백중 부화가 잘 될 것이다. <고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