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모래시계/김정임
숨 쉬는 모래시계
김정임
먼 데서 혹은 가까운 데서 구름지도를 따라 왔을 모래들
바람에 부서지고 깎이며 풀풀 날아다니다가
정처없던 것들이 서로를 불러들여 언덕을 이루었다
정처없음의 빈 곳을 메우듯 언덕을 이룬 사구
이슬과 빗방울 머금을 수 없으니 애증의 깊은 샘 파 내려갈 일 없겠다
메마른 모래 숨결에 바다메꽃 분홍 꽃잎을 펼쳤다
시간의 꽃잎은 어디서나 피고 지듯이,
호리병안의 모래처럼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고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고 마침내 저 사구 사라지면
뜨거운 모래알에 실려 나, 구름지도 따라 어디를 떠다니게 될까
모래시계가 숨을 토할 때마다
늑골 사이로 먼저 날아 온 모래알들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길 없는 길,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수많은 길을 숨기고 저 혼자 듣고 있는 사구의 모래시게
한 없이 느린 속도가 순간을 움직이고 있다
—『미네르바』여름호
섬세하고 여린, 한지처럼 번지는 이미지의 김정임 시는 변화의 모색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서정시 육화의 한 축이랄 수 있는 선경후정은 대상에 몰입하여 교감하는 것이라 할 때, 이번 『미네르바』 여름호에 발표된 그의 시는 종전의 시작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주제에 대한 탐색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숨 쉬는 모래시계’는 살아 있는 모래시계다. 살아 있되 모래시계처럼 유한성이 있는 존재로 화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시는 모래시계로 인식된 자신의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구름 지도를 따라’ 모래가 날아 왔다는 인식이 재미있다. 이 사멸하는 모래들은 ‘정처없’을 수밖에 없어 ‘서로를 불러들여 언덕을 이루었다’. 마치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 것이 외로움과 그 소외, 고적을 이길 수 없어 사람에게 기대기에 마을과 도시를 이루었듯 모래들도 사구를 이룬다. 그렇기에 ‘정처없음의 빈 곳을 메우듯 언덕을 이룬 사구’인 것이다. 이런 메마름과 소외의 덩어리들은 태생적으로 ‘이슬과 빗방울 머금을 수 없’어 ‘애증의 깊은 샘 파 내려갈 일 없’는 집합체다. 그런 메마름 속에서도 분홍 시간의 꽃잎은 피고 지나, 그러나 그 사구는 사라질 사구이며 끝내 옮겨갈 무정형의 덩어리다.
이미 ‘숨 쉬는 모래시계’인 화자는 ‘늑골 사이로 먼저 날아 온 모래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예측을 불허하는 ‘길 없는 길’이자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길이다. 그것은 사구가 ‘수많은 길을’ 내부에 숨기고 저 혼자 듣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니까 화자는 이 사구의 모래시계가 느끼고 듣는 것을 느끼고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염원일 뿐 쉬운 일도 아니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화자는 그 한계 속에서도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한 없이 느린 속도가 순간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의 시가 어디로 가 얼마만큼 깊어질지 기대되는 전환점의 시(함께 발표된 시 「화문 花門」 또한 죽음의 문에 대한 성찰이다)로 보인다. (부주간/윤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