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악수를 조심하라고?/김남호

也獸 2010. 1. 2. 19:15

악수를 조심하라고?

                            김남호

 

 

 

악수는 아무하고나 하는 게 아니다

손바닥에도 성기가 있다

 

(누나는 그 남자와 나눈 단 한 번의 악수 끝에 배가 불러오지 않던가)

 

사타구니를 핥던 고양이가 세수를 한다

숨겨진 발톱으로 제 얼굴을 할퀸다

할퀸 자국마다 빳빳한 수염이 돋는다

 

그렇다고 수염의 길이와 성기의 길이와 상처의 길이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바닥은 가시거리가 매우 짧다

 

* 그의 시는 돌발 영상 같다. 아니 돌발 영상이 짧게 자꾸 이어지는 것 같다. 그것이 성공적인 때는 (무봉)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 수일한 이미지가 되지만 어떤 때는 왜 이런 시를 쓰지? 왜 이렇게 쓸까, 하는 의문을 주지만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좋은 시의 경우에는 서늘함과 더불어 감동도 주고 또 상큼한 충격(이질적이기에)도 준다. 위의 시는 재미도 있고 거리가 주는 충격도 있고 완성도도 높게 느껴진다. 좋은 시다. 아무하고나 악수하지 말아야지, 괜히 나의 욕망만 들킨다.

* 성격이 다른 좋다고 생각한 시를 하나 더 첨부한다.

 

 

모래의 여자*

 

 

 그 여자는 초저녁부터 쉴 새 없이 모래를 퍼다 날랐다 산이 하나 허물어지고 또 다른 산 하나가 솟아날 때까지, 계곡 하나가 거덜 나고 새로운 계곡 하나가 들어설 때까지, 그 많은 모래를 무엇에 쓰려 그러냐고 묻자 모래 씹은 얼굴이 돌아왔다 그녀는 모래를 나르는 틈틈이 뻐꾸기를 키웠고, 뻐꾸기가 알을 바꿔치기할 때쯤 의심스런 새벽이 왔다 그녀가 마지막 모래 한 삽을 가득 퍼서 목구멍에 탁 털어 넣고 사막을 빠져나왔을 때는, 사막 밖에는 새로운 사막들로 가득했고 그 낙타는 그녀가 밤새 만든 사막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였다

 

*아베 코보의 소설

 

=독자가 시에서 감동을 느낄 때는 다 다르지만 나와 다른 점을 느낄 때도 감동의 진원지가 된다. 김남호 시인의 위와 같은 시를 보면 내가 흉내낼 수 없다는 어떤 지점에서 내겐 감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시는 말이 안 되는 정황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흐름이 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