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서울집에 오니까, 셀러 소설책도 다 있다. 아내가 사 놓은 책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책읽기도 편식이었던 셈. 봄 계간지 읽다가 머리도 달랠 겸 읽었다. 벼르던 고전이 주는 마치 결전을 앞둔 선수 같은 느낌이 오는 책은 아니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욱이 하드커버에 270쪽, 작은 판형에다가 중간 장의 구분이 있어서 금방금방 책장이 넘어갔다.
단편, 「무지개」를 연상시켰는데, 역시 답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여기서는 보통 모험이라는 말 대신에 ‘자아의 신화’라는 말이 쓰였다. 자아의 신화를 구현하는 것이 ‘보물’을 찾아간다는 것이 좀 촌스럽게 느껴졌는데, 더욱이 사랑도 멀리하고 그런 선입관을 양치기의 디테일한 삶과 사막의 풍경, 그리고 연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그것을 넘게 하고 있었다. 중간에 나오는 사랑은 좀 엉뚱하지만, 그것이 기다리는 사막의 여인이라는 점은 아귀가 맞아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복선이 잘 깔려있다고나 할까.
내게 가장 다가온 말은 ‘표지’라는 말이다. 신이나 사물들의 말에는 어떤 표지가 있기에 그것을 읽고 대화하기에 노력해야 ‘자아의 신화’를 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저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나는 것이네.‘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나도 잊지 말아야 하고 꼭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을 다시한번 이 소설을 통해서 되짚어 본다.
‘만물은 순수한 생명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생명은 그림이나 말로는 포착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계시를 통해 전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림과 말의 매혹에 끊임없이 탐닉하다, 결국 만물의 언어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 언덕은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랍니다. 우리의 사랑도 사막과 같을 거예요.’
남자를 보내는 여자의 위로의 말이다. 이런 여자라면 연애할 만한 여인이 아닌가 한다. 이 여인은 한술 더 뜬다.
‘용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보물을 찾으러 가지요.’
나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어디로,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