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집 이후 발표한 시
붉은 망사들 외 1편/윤관영
也獸
2010. 7. 5. 13:17
붉은 망사들 외 1편
윤관영
죽고 싶었겠지 뱀은 눈은 못 봤다
어쩌지 못하던 뱀은 꼬리부터 얼었을라나 눈은 못 봤다
불안에 떨었을 눈, 여몄을 비늘, 얼기 전까지 움직였을 혓바닥
느닷없이 냉동실에 들어간 뱀 닳도록 밀었을 코는 못 봤다
언 후부턴 지금 모습 그대로였을, 눈은 못 봤다
독마저 얼어 붙었나?
어디든 파고들 것 같은 똬리 몸체도 제대로 못 봤다
색깔도 자세도 냄새도 전처럼 후진으로 풀릴 것 같은,
냉동실에서 꺼낸, 실감나는, 달아날 것만 같은 뱀
붉은 양파망 만지기는커녕 눈은 차마 못 봤다
배수진 치다
거미줄 쳤다
실물 크기 여인 나신상
처녀임이 분명한 몸매의 나신 석고상
하필 그곳에 거미는 거미줄을 쳤다
생체가 아닌 석고가 사람의 눈길을 끌듯
거미도 그 무엇에 끌린 것인지
소득과는 무관할 법한 그곳,
내려다보이는 거미줄
돌하르방 코 쓰다듬듯 쓸어줄 수가 없다
꽃도, 구멍도, 습기마저 없는 그곳
전혀 소득이 없다면 거미줄도 없긴 할 텐데
거미는 거기에 진 쳤다, 그곳에
곰팡이가 피어서
외통길이라서
힘 준 발가락이 있다, 정지된 정지
생체가 있다
머리채에 손가락을 묻은 귀에도
거미줄
거미는 아니 뵌다
<현대시학>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