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성가 양로원/조창환
也獸
2010. 8. 24. 08:03
성가 양로원
조창환
베드로닐라 수녀님
수녀복 베일 밑으로
흰 머리카락 몇 개
국화차 냄새 나는 기도실 들러
연도 책 들고 영안실 간다
말갛게 머리 빗겨 볼 붉은
노파, 안나
마른 구절초
책갈피에서 툭 떨어지듯
팔락
흔들린다
노인들 꽃게 거품같이
낮게 웃는다
바람 희게 기울어지는
성가 양로원
베드로닐라 수녀님
술빵 굽는 주방 들여다본다
*조창환 시인의 시집 <마네킹과 천사>는 이전 시집보다 재미가 덜하다. 해설자가 저번 시집보다 생활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고 했는데, 여행시에서 보듯 그의 장기인 이미지가 서사를 설명해야 할 때, (부득이하게 최소라도) 그것이 이미지를 위주로 한 형상화와 맞물려 그의 장기를 잃을 때가 있다. 감정의 절제와 압축된 형상화로는 서사의 내용을 다 드러내기도 힘들고 또 감동을 전제로 하는 시 쓰기가 아니기에 그렇지 않은가 한다. 이는 일말의 아쉬움이지 시집 전체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위의 시 「성가 양로원」은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수일한 시가 아닌가 한다. ‘노인들 꽃게 거품같이/낮게 웃는다’는 비유도 좋고 ‘바람 희게 기울어지는/성가 양로원’의 상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묘사가 아닌가 한다. 또 ‘베드로닐라 수녀님/술빵 굽는 주방 들여다본다’는 마무리는 방금 죽음의 전례를 치른 수녀님이 담담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삶과 죽음에 대한 동시적 긍정을 드러내는 좋은 마루리가 아닌가 한다. 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