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그림자들의 야유회/김점용

也獸 2011. 1. 11. 15:48

 

 

그림자들의 야유회

                       김점용

 

 

  뒤풀이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누가 불러 잠시 다녀왔더니 커피가 다 식어 리필을 부탁했을 뿐인데 종업원은 한참 뒤에 딸기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가져와서는 자기는 모리는 일이라고 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지만 딸기는 잘 먹는 편이라 맛을 조금 보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혼자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는다 눈치를 주고

 

  누가 불러 잠시 다녀온 것도 모두가 야유회를 간다고 하니 누군가 한 명은 당번으로 남아야 하니까 공으로 남 때리는 피구도 싫고 헛발질 잘하는 족구도 못해서 내가 남겠다고 했을 뿐인데 남아서 텅 빈 사무실의 텅 빈 의자에 한 번씩 앉아가면서 그들과 수건돌리기를 하며 놀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혼자 데이트를 즐겼다 수군거리고

 

  끼리끼리 모여 앉아 비닐을 둘러쓰고 말풍선을 부풀리고 고기를 뒤집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는 사이 내가 그들 뒤에 석유 냄새나는 기념수건을 번걸아 놓아가며 차례차례 술래로 만들었다는 걸 모르고 손을 뻗어 뒤를 더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서 빙빙 돌다가 지쳐 쓰러졌다는 걸 모르고 사람들은 꾀병을 부린다 야유를 하고 야유회를 즐기고

 

 *시 참 좋다. 가벼우면서 깊고 일상적 전염력이 강하게 다가오면서(끌면서) 섬쩍지근하다. 여기의 나는 양쪽의 나 같다. 그림자는 원형을 어떻든 복사한 것이니까. 수건돌리기가 기억난다.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닌 놀이인데, 그 놀이는 왜 이어지고 있을까?

 *시집 <메롱메롱 은주>상재를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