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시적재미, 라는 것!

也獸 2012. 3. 2. 18:33

비나리-()

박남철

 

 

1

 

새애가아......

 

내가 별로 유명한 시인도 아닌데

수도 없이 많은 문학 잡지들이 매달 날아든다,

 

월간지 계간지 시 전문 계간지

씨 전문 계간지(씨 뿌리는 계간지?) 등등,

가지가지다,

 

열어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나같이 시시껄렁한 기성 시인들이 몇 놈,

 

그리고 요즘 새로이 유행한다는

읽어봐도 도무지 모슨 소린지도 잘 모를

낙서를 해대는 젊은 시인들이 몇 놈,

 

그러고는 꼭 그 꿩 먹고

알 잘 먹는 잘살기-()의 원조 펭귄 영감 조처럼,

몇 놈이 쭈그리고들 앉아

 

신춘문예 심사하는 흉내 내는 사진들이 몇 장,

 

아무리 봐도 우선 그 자신들부터가

심사를 당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심사를 한다고들

오만 생똥-폼들을 다 잡아대고서는,

 

쭈그리고 앉아들 있는 사진들이 몇 장......

 

창비문지해가면서 시집 시리즈 들이 나올 때

거기에, 애초에, 1번 못 먹은 자들은 이젠 다

헛일들이 되고 말았듯이,

 

도대체 저런 놈들이 심사를 하는

이런 똥꽁무니에 내가 줄을 서서야 대체 뭐가 될 수 있으리오,

싶기도 하련만은......

 

2

 

어허이이이이이이......

 

-징구(徵求), 좆징구, 좆징구 꿍!

좆징구, 좆징구, 좆징구, 좆징구 꿍!

 

어헝이이이이이이...... 허이!

 

*^)))!

―『시와반시겨울호

 

4계절 내내 10층에서 연세대를 내려다보면서 지내고 있다.

백양로의 가로수가 바뀌는 것으로 계절이 어렴풋이 가늠되는 유리창에 갇혀서, 아침녘에 잠깐이지만 내려다보는 시간을 보냈다. 기형도의 시 대학시절이 떠나지 않았다. 백양나무 아래에는 책이 버려져 있었고 그 아름다운 곳에 다다르면 고개를 수그리고 지나가고 시인은 기관원이라 털어놓고 교수는 말이 없고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플라톤을 읽던 그. ‘왜 그의 시는 지금도 울리는가. 그리고 그의 시를 나는 내내 읽고 있는가그런 생각으로 지냈다. 지금에 와서야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김현 선생의 말이 실감하고 있다.

요즘 시는 재미가 없다. 이는 나의 상태도 한몫을 하겠지만, 도대체 시적재미란 것이 실종된 문학판이 아닌가 싶다. ‘너무들 하시는 님들이시여!’와 같은 탄식에 절로 동조된다. 주목 받으려는 여러 시도들은 있지만, 여타 시인들과 구분되려는 금 긋기는 있지만 시적재미와는 거리가 먼 시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나마 구분의 의미조차 염두에 두려는, 두려움조차 없는 시는 지겨움을 넘어 두렵다.

‘1’, ‘2’, ‘글보기’, 보유의 형식으로 쓴 박남철 시인의 시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의미가 있으려니 하면서 조심스럽게 읽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위 시 비나리-()는 읽는 순간, 속이 다 시원했다. 내가 시적재미라 했지만 시적재미라는 것(흥미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은 시의 어떤 한 측면만이라도 올연히 보여주면 되지 않나 싶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좋은 시는 여러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다 갖춘 완전체라면 또 그것이 어찌 시이겠는가.

‘1’새애가아......’‘2’는 사실적인 산문에 가까운 ‘1’의 내용을 커버하는 장치겠지만 누가 있어서 시인의 고변을 자기 문제로 삼아 자신을 반성할 것인가. ‘문지’, ‘창비’ 1번은 고사하고 거기 끼이기를 고대해 마지않는 나 같은 놈이 있고, ‘예심심사만 맡겨도 감지덕지할 시인이 수두룩한 판에, 타락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판이야말로 개판이다. 누가 있어 반성할 것인가, ‘-징구(徵求)’ 세상!

속 시원한 시 한 편도 시인에게 맞는 그릇이 있다. 그것이 개성이고 그것이 시적재미가 아닐까 한다. 심사를 몇 구절의 말로 대신한다. 그러나 누가 있어 반성할 것인가?

 

모모야, ()도 나름대로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부끄러워 죽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죽어 버렸다(차타레 부인의 사랑)

 

하지만 별로 놀랄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악마는 다른 악마를 닮았다고 하니까 말입니다.(돈키호테)

 

 

 

 

파는 백합과란 말씀

이원

 

 

 

피망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란 파프리카

빨간 파프리카

주홍 파프리카

 

모두 적극 가담으로 분류되지만

 

그러는 너 피망!

 

고추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고추로 변질된 시기도 미상인 요주의 종자로 분류되지만

 

감자 가지 토마토 후추 고추 모두 거느린

가지과의 시선에서 보자면

 

정원에 심으면 관상용

밭에 심으면 한 순간에 식용으로 몰 수 있는

 

고추 너!

결실인 열매의 입장에서 보자면

 

파가 가득한 파밭에서

왜 방향만 자꾸 따지고 있는 거냐

입장부터 안 되잖아

파의 방향 속에 파를 넣지 말고

파를 보란 말이다

파란 그런 것

 

……는 백합과란 말씀

가진 거라곤 파밖에 없어서

파라면 무조건 편파인

파 밑 흙이 주장하길

 

당신

당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편파

편파는 절뚝발이

 

조금 짧은 다리와 조금 더 긴 다리는 함께 가지고 있는 것

 

편파가 가장 애틋하고 무례한 분류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편파로 싹을 틔어온 나!

흙이 가진 고유 권한

 

그러니 당신

당신

또 거기 당신

좌파도 우파도 아닌 편파로

전 생애 동안

당황하고

눈물 나고

절룩일 때

최고의 축복

 

고추 열매는 당신唐辛이라고도 부르는데

 

당신도 당신이 열매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시와사상겨울호

 

시를 발표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시는 재미있는가? 내 시는 개성적인가?’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내용으로든, 나는 답해야 한다.

한동안 박용래시전집을 지속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나의 부족 탓이었겠지만 읽어갈수록 시집은 더 읽기가 어려워졌더랬다. (미당 시전집은 읽을수록 더 오르고 싶은 산이지만) 기형도 시집은 가지고 다니는 재미가 있다. 따지고 보면 그 개인의 연애요, 가족사. ‘사내’, ‘’, 혹은 이라 3인칭화 된 이들조차 시인 개인을 지칭한 것이지만 그 우울하고 쓸쓸하고 괴롭고 애절한 이 개인사가 왜 새록새록인가 하는 점이 지금껏(약간의 난해성과 함께) 날 끌고 있다. 시인에게 개성이란, 아니 시에서 개성이란 시인을 떠나서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그것을 어떤 형식에 담아서 어떻게 내놓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은퇴가 없기로 정치집단을 꼽을 수 있지만 타계가 은퇴인 것이 시인 세계다. 강호 고수가 애병을 놓는 것을 기념하는 금부세수가 무림계엔 있지만 문림의 시인에겐 없다. 줄지는 않고 늘어만 나는 것이 시인이다. 그런 추세다. 작금의 시인들에겐 무한경쟁의 시대가 왔다. 시로써 진검승부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출신을 내세우는 것으로, 혹은 학연 지연을 내세우는 것으로는 안 되는 무한경쟁의 세상이 온 것이다. 물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출신과 지연 학연 등이 더 중요해져 방파를 만들고 하겠지만 감출 수 없는 것이 초식과 내공인 바, 승부에서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강자인 판이 온 것이다. 달리 보면 매우 즐겁고 유쾌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기도 하다.

시가 되려면 제목부터 되는데, 이 시는 제목부터 느낌이 좋다.

이 시의 초식은 가볍고 경쾌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있고 즐겁게 만든다.

관점에서 보자면’, ‘입장에서 보자면’, ‘시선에서 보자면에서 초식을 묶으면서 풀어내리고 다시 묶으면서 풀어내린다. 그러다 무례한 분류법이라고 한다면에서 모든 내공을 심은 최후의 절초를 쏟드린다. 그 발랄한 초식은 전 생애 동안/당황하고/눈물 나고/절룩일 때/최고의 축복을 선사하는 위무의 춤인 무대다. 그것도 전 생애 동안그러했던 자들에게 주는 위무의 초식이다.

당신도 당신이 열매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시와표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