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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눈물/최금녀

也獸 2012. 5. 3. 23:10

고래의 눈물

                   최금녀

 

 

그날,

고래가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듯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많이 먹으라 했던 엄마

부산 자갈치 시장 좌판에서 맛본

검고 찝찔했던 전쟁 속의 고래

 

작살에 끌려와 부두에서 피를 흘리던 고래와

포탄에 몰려 부산까지 내려온 엄마는

팔자가 띠동갑이었다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늙어 죽지 못하는 박복까지도

 

태어난 곳에서 눈 감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한이라는 거

자갈치 부두에 누웠던 고래를 보고 알았다

 

비 뿌리는 몬트레이 해안에서

고래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저 소리는 넘어오는 슬픔을 꾸욱 꾹 눌러 참는

고래들의 신음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날, 나는 엄마의 삶을 마감시킨 전쟁과

고래들의 꿈에 작살을 꽂는 인류에게

이제 그만

제 태어난 곳에서 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가슴에 손을 모았다

 

멀리 바다 쪽으로 사라지는

고래와 내 엄마의 눈물을 위해.

 

*몬트레이

캘리포니아 주 태평양 연안에 있는 경치 매우 아름다운 휴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