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배롱나무 사원/김지헌

也獸 2012. 5. 4. 08:46

 

배롱나무 사원

김지헌

 

 

신흥사에 가보니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딱 하나

배롱나무에 힘껏 제 것을 박아 넣은

적송을 보기 위함이라

 

나는 그 희한한 광경을 이쪽저쪽

줌을 맞춰가며 카메라에 담는데

 

근처 해신당과 세트로 기를 받으면

왕건 같은 아들 하나 점지해 준다니

천년 고찰에서

이종교합 불륜을 부추긴다?

 

한여름 땡볕의 고요가

어쩐지 불길하기만 한데

꽃 피는 일이 일생의 전부인 배롱나무가

제 속엣것 모두 퍼주고

공즉시색

 

속이 텅 비어가자

부신 햇살에 잠자던 솔 씨 하나가

눈 뜬 것이리라

그래서 죽어가던 배롱나무도

이심전심이 된 것이리라

 

  *시집 <배롱나무 사원>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