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숲을 걷는다/윤성택
也獸
2013. 10. 19. 18:55
숲을 걷는다
윤성택
밤은 무수한 기로로 흩어져
숨을 쉴 때마다 추억이 서린다
숲을 이룬 시간이 폐부에 있기를,
마음에 나무와 나무가 자라고 빽빽한 숲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이름을 그곳에 묻어왔다 어느 날
이파리가 일제히 눈을 부시게 한다면
당신은 그날의 선택에 오래도록 서 있는 것이다
내면에 둘러싸인 안개는
뚜렷하지 못해 가엾은 것들의 잠언이다
앙상한 저녁을 깊이 들이마신다
기침처럼 만져지는 어둠이 쓸쓸히 잠기고
잊지 않기 위하여 좀더 뿌리를 뻗는 기억들,
바닥의 낙엽들이 축축하게 달라붙는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숲이 세상에 있고
알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음이 있다
우리는 위태로운 길을 보내 서로의 방향이 될 뿐
아무것도, 혹은 밝혀진 것이 없는 숲을 간직한 채
일생 안에서 어두워지는 것이다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