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포엠레시피/황옥경

也獸 2014. 7. 27. 17:15

포엠 레시피

              황옥경

 

 

숙깍두기를 담근다 물 많고 연한 가을무가 제격이다

 

 

깍둑썰기한 무 조각들을 끓는 물속에 넣자

물은 순간, 숨을 죽였다가 와락 무의 몸을 껴안는다

 

 

숙깍두기의 생명은 익힘의 정도,

 

 

깜깜한 땅속에서 여름내 익혀 온 꿈,

온몸에 담아둔 빛과 향, 오롯이 거두려면

하얗게 일어나는 거품을 잘 걷어내야 한다

 

 

마침내 투명해진 무

온몸의 열을 냉수로 가셔내고

미나리, 실파, 고춧가루, 새우젓

고명을 넣어 색깔과 간을 맞춘다

 

 

아삭아삭한 숙깍두기가 만들어졌다

엄마 틀니에도 부드럽게 잘라진다

 

 

거울 속 미소 띤 엄마의 얼굴도 숙깍두기처럼 말갛다

*시집 <탄자나이트, 푸른 멍> 출간을 감축드립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