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의 주방편지/윤관영 / 시인의 말
시를 못 쓰는 시간이, 아니 세월이 길었다.
시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게을러야, 몸이 게을러터진 지경이 되어야 나오는 괴물 같다.
하루, 그러니까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하는 상황에서는 몸이 지쳐쓰러지기 일쑤었다.
피곤을 풀 길이 없고 상상력은 피어나지 않고, 써야 한다는 강박만이
마치, 눌린 깻묵처럼, 응어리처럼, 억울한 어떤 감정처럼 쌓여갔다.
오는 잡지와 시집은 찢어놓기도 바쁘고
아니, 목차조차 읽기도 버거웠다.
내가 게으른 것이라 여기고, 더 부지런해야 한다고 몸을 다그쳤지만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청탁 오는 것이 겁났다. (여지껏 청탁을 겁낸 적이 없었는데)
두어 군 데는 청탁에 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무식을 극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겁났다.
그의 시를 읽지 않은 시인이 겁났고 그의 이름이 외워지지 않았다.
그냥 초조해지기만 해서, 달리 살 방도가 없어서 나는 내 무식을 사랑하기로 했다.
무식한 새끼!
좀 나아지려나, 이번 시집 내고 좀 추스려 봐야지.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이다.
(아직 표4글 두 개는 들어오지 않았고, 발문은 진행 중이다. 좋다!)
◇시인의 말◇
갈고 또 간다고 해서 도끼가 검이 되지는 않는다.
도끼는 무게가 생명, 도끼의 날을 가는 것은 정작 장작이다.
내가 도끼인 줄 이즈막 알아먹었다.
‘무식한 새끼!’
내가 내게 하는 말이다.
‘그래, 무식도 개성이다!’
내 시에 도끼 같은 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끼는 자루가 생명,
육수 냄새가 밴 반들반들한 자루
누군가 내 도끼에서 육수 냄새를 맡았으면 좋겠다.
(시는 발표 역순이다.)
―望遠洞 父子부대찌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