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소와 나/김상미

也獸 2017. 11. 24. 23:24

 

소와 나

김상미

 

 

시골 길에서 문득 마주친 소

흙 색깔의 따뜻한 짐승

철썩 꼬리를 치며 정다운 숨결 내뿜는다

 

만지고 싶고 기대고 싶고 웃어주고 싶은데

왠지 무섭다

 

어릴 땐 저 소의 젖을 먹으며

소와 함께 하나의 자연이 되어

밭도 갈고 물도 마시고 등 위에 올라타면서

빛나는 별, 미래도 속삭였는데

 

소와 떨어져 산지 몇 십 년

나는 고독한 아스팔트, 매끄러운 도시인이 되고

소는 잊혀진 첫사랑보다 더 슬프게 멀어져

끔벅끔벅 낯선 이를 보듯

그 큰 눈을 딴 데로 돌리네

 

한 나라 안에 살면서도

시골과 도시는 이처럼 먼 이국이 되어버렸네

 

 

*김상미 시인의 이번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는 이전 시집보다 1인칭에 의존하는 시들이 많다. (나는 그게 좋다.) 거지반 그렇다. 비록 객관적인 것을 말하는 것 같아도 그것은 1인칭의 소리다. 그 소리에는 염원도 있고, 또 푸념도 있고, 또 배신에 우는 상처도 있고, 같은 동지인 시인에 대한 연민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또 이상향에 대한 노래도 있다. 그렇다.

 

1인칭의 느낌이 많고 생각이 많고 안타까움이 많고 배신으로 인한 아픔도 많고 그만의 결곡한 바람도 많고 또 진지하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짧기가 힘들다. (그것 자체가 어떻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는 얘기다. 다만, 좋은 것은 그것이 솔직한, 기교가 배제된, 울림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안타까움은 가르치려는, (자신의 어떤 무엇?)으로 달려가기도 하지만, 책에서 얻은 지식적인 면에 기대는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울린다. 이번 시집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이번 시집의 명편으로 난 기하학적인 실수를 꼽고 싶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1인칭 얘기를 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체위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얘기해 주었는데도 못 알아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본다. 그것은 異性의 본질이 갖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재차 시집을 읽어 나가는 도중 발견한 시가 소와 나. 적절히 밋밋하면서, 적절히 시골과 도시의 간격이 유지되고, 적절히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절절히 사람과 짐승이 연결되고, (일방적으로 고양이를 예찬하는 것과는 다른) 적절히 간절함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기대와 좌절이 평평하다. 쓸쓸함조차 평평하게 길다. 난 그냥 이 시가 좋다.

 

아이가 병아리를 죽이는 시나,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는 것을 (그러한 분노를) 시화하는 것을 보면 그의 시적 영역이 넓은 것으로 여겨지나 그닥(그다지로 바꿔쓰고 싶지 않은) 와닿지는 않는다. 어떤 요소가 그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다는 것은 살필 수 있으나 와닿는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소와 나가 그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