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서수찬
이사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이사를 했다. 거북이 산이 있어서 구산이라는 龜山洞으로 이사를 했다.
조용하고 좋다.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아서 좋고, 또 계약 기간이 있어서 또 이사할 걱정을 안 해도 되어서 좋다. 제법 책도 읽히고, 뭔가를 쓸 여유가 생겨서 좋다.
저번에 살던 곳은 식당과 너무 가까워서 일에서 헤어나질 못했는데, 좀 멀다는 게 좋은 것이 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되지만 그런 것도 즐거운 것이 조금치나마 집에 있는 자유성이 보장되어서 좋다. 아들 전화만 받으면 깜짝깜짝 놀랬는데, 그것을 거리가 지워주어서 심신에 적잖은 평화가 왔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는 인식이 좋다. 그런 긍정의 힘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는 말도 그런 위안을 위안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지.
이사를 하고서 닦고 치우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전에 살던 분으로부터 위안거리를 물려받았으니, 12키로 세탁기와 3단 가스렌지를 물려받은 일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우리도 이사를 하게 되면 후임자에게 어떤 위안거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그도 안되면 적어도 불만거리를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건양다경, 고마운 볕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