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스캔들/이인원

也獸 2020. 12. 30. 21:37

스캔들

이인원

 

 

늦가을에 핀

파리한 진달래꽃에게

어쩌려고! 라고 너무 다그치지 마라

꽃이 핀다는 것은 어쨌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 해 보려는 눈물겨운 안간힘

정말이지

모란이 지고 나면 그냥 그뿐인 일

뭘 좀 어찌해 보려고

쑥덕쑥덕 피는 말들과는 상관없이

꽃은 다만 어쩔 수 없어 핀다

시퍼런 당신들보다 더 무섭게 입 꾹 다물고 핀다

봐라

장미는 여왕이 되려고

불평 없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고

며느리밥풀꽃은 부엌데기로

찬밥 신세가 되고

아무 죄 없이 사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으니

벌써 오래전 게임이 끝난 줄 모른 채

끝까지 함구하고 있던

섭섭한 봄빛

시샘하지 마라

언젠가 당신 겨드랑이에도

어쩔 수 없는 꽃

불쑥 피는 날 있을 것이다

꽃들은

서로서로 꽃같이

핀다

 

*그러니까 꽃은 피고 싶어 피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꽃은 피고 싶다고 또 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 저마다의 사정과 저마다의 과정이 있는 것! 그러니까 꽃이다.

그러니까 꽃은 어쩔 수 없이 피기도 하고 그러니까 꽃은 어쩔 수 없어 피기도 한다. 꽃이 피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 할 수도 있지만 이유가 없어도 피는 게 꽃이다. 그러니까 꽃은 설명할 수 없고 설명 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니까 꽃이다.

그러니까 꽃은 철이 없고, 아니 철을 넘어서고, 그래서 나는 철딱서니가 없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홍색으로 질문했다이인원 시인의 시집은 연분홍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