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시
벌레/백우선
也獸
2007. 8. 11. 13:36
벌레 _백우선 사슴은 참 용하기도 하지 내가 뒷산을 오르면서 골똘히 제 생각을 했더니 바로 눈앞에 나타난 거야, 사슴벌레가 되어 갇혀 지내자니 그 수밖에 없었겠지 얼마나 다급했으면 뒤꼭지뿔을 앞턱에 달고 날아왔을까 둘이 한참을 손 맞잡고 눈을 맞추었지 어두운 두 눈엔 비마저 묻어 있었어 시계와 마이너스 통장에 갇힌 내 몰골 탓이었을까 그나마 나는 그럴싸한 벌레가 돼보지도 못해서 애틋하게 찾아주는 이라고는 없거든 언젠가는 내가 나를 연민해 마지 않았으나 지나는 이들이 발로 툭툭 차면서 일벌레, 돈벌레도 아니라는 거였어 |
* 이 시는 사슴에 대한 재해석이자 벌레에 대한 재해석이다.
사슴에서 사슴벌레로 나아가는 상상력이 재미있고 벌레에서 벌레도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동감된다. 그러한 연민이 '둘이 한참을 손 맞잡고 눈을 맞추'게 했겠지만 시인은 역시 성찰에 이르러 '일벌레, 돈벌레도 아니라는' 자조적 확인에 이른다. 시인이 돈벌레 일벌레가 되어서야 시인이 될 수도 없지만 역시 돈도 일도 시원찮은 것이 주는 참담함은 경험한 이 만이 아는 것이다.
아, 그렇다, 가끔은 뒷산이라도 올라야 한다. 그러면 벌레를 만날 것이고 그도 안되면 확실한 분내, (지나치는 여인의 분내마저 확실하게 하는 것이 산이다)라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자 가자 산으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