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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길고 긴 시의 기우제-윤관영 시집-고영민 본문
길고 긴 詩의 기우제(祈雨祭)
- 윤관영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
1. 길고 긴 詩의 기우제, 그리고 첫 시집
시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란 집을 짓고 불을 붙이고 농사를 짓는 일과 동등한 일로 보았으며, 시인이란 논밭을 갈아서 일하는 대신에 주문을 외어 비를 내리게 하고 수확의 감사를 노래하는데 전력을 다한 사람이었다.
이런 시에 대한 발생 기원 및 시에 대한 개념은 동양에서도 동일성을 지니고 있다. 동양 일원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詩라는 한자의 구조를 보면 言과 寺의 합자임을 알 수 있다. 言은 音이나 談이 아닌 분명하고 음조가 고른 말을 뜻한다. 寺는 持와 志의 뜻을 가지고 있다. 持란 손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말하며 志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대상을 향해서 곧게 나감을 일컫는다.
윤관영 시인의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을 관통하는 것도 부단히 집을 짓고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붙이고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시집은 농사꾼처럼 정직하다. 언어를 일부러 비틀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씨를 뿌려 알곡을 거두듯 오로지 정공법을 고수한다. 온몸으로 묵묵히 시간을 감당해낸 자의 수용과 견인의 태도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1994년 등단하여 올 2008년 5월에 첫 시집을 출간했다. 장장 15년의 세월이다.
‘인디언 기우제’라는 말이 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들에게만 유독 영험한 레인메이커가 있어서일까?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관영 시인의 시적 내력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詩가 올 때까지 詩의 기우제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집의 말미에 비를 불러낸 하늘을 올려다보며 젖은 채 이렇게 읊조린다. “아, 내가 예쁘다!”라고. 이처럼 그의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은 길고 긴 기우제(祈雨祭)에 대한 얘기이다.
아서라, 내
밥에 쌀눈을 보지 못하는 이들
혼쭐 한번 내주겠다
떡판 뒤집듯 뒤집어 보겠다
오진 꿈 꾸었노라
쌀도 현미도 보리도 좋지만
콩이야 팥이야 말도 많지만
차라리 내 찹쌀이 될란다
날 쳐
날 녹여
남 끌어안는 찹쌀이 될란다
애꿎은 체만 탁탁 쳐대는 시절에
오오
- [체 치면서] 부분
위의 시는 시집의 첫 장에 소개된 시이다. 그의 시집을 읽어나간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그의 15년 동안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밟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시는 발표순이다’라고 적고 있다.
위의 시 [체 치면서]는 시인의 시관(詩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시를 대하는 그의 발원(發願)이자 결연한 주술사적 태도는 <“나도. 찌처럼 예민한 촉수이고 싶다/ 무한 탄력의 낚싯대이고 싶다/ 한번 결단하면 끝장을 보는 바늘이고 싶은 것이다.”>([추일서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 왕소금과 은방울, 그리고 힘겨운 중심잡기
시집의 앞부분에서 몇몇 시편들이 시인으로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시편들은 살아오면서 또는, 시를 쓰면서 겪게 되는 시인의 실존적 슬픔과 절망을 감싸 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배고프고 목말라 소금을 먹는, 두려움 속에서 은방울을 가지고 놀다 기갈 속에서 우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도를 치르는 무녀巫女는 신통력을 갖기 어려워, 그래 아기보살을 몸 어딘가에 지닌다는 설이 있는데, 초경이 한참이나 전인, 어리나 똑똑한 여아를 독 속에 집어넣는다는 설이 있는데, 그 속에 왕소금과 은방울을 넣는다는데, 이건 설이 아니라는데, 컴컴한 속에서 소리치다 배고프고 목말라 소금을 먹는다는데, 두려움 속에서 은방울을 가지고 놀다 기갈 속에서 운다는데, 울다 기진해 죽는다는데,
- [옛날, 일설一說에] 부분
또한 “딱, 세 송이 달았구나/ 9월 장미/ 20층 아파트 뒤꼍 화단/ 볕이라곤 없는, 바람도/ 그림자를 물고 가는 곳에서/ 미처 가시도 안 아문 것이-” [9월 장미]처럼 자신의 삶을 볕도 없고 바람도 없는 곳에서 가시도 안 아문 장미로 표현하기도 하고, <“질진 게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흔들어 쏟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진저리 진저리 진저리/ 저것 지는 동안/ 겨드랑이에서 어깨로 만발하던 매드라미 같은 것”> ([질통])이라며 자신의 절망에 고개를 흔들며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중량감을 삶으로 노래하며, 기우제에 대한 자신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를 새롭게 경작한다. 그는 이것을 그의 시에서 직립의 의지로, 중심잡기로 얘기하고 있다.
수명이 다 해도 배는
물이라야 바로 서는 것
노가 빠져 나간 고리
엄연한 앞뒤 자리, 배는
거울어도 강으로 기운 것이다
바다만 바라는 것이다
<중략>
이제 밀어내는 물,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듯한,
몇 번 뒷걸음이면 닿을 듯한, 거리는
파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그 물에서 중심 잡다, 그 채로
그 속에서 가라앉고 싶은
눈빛이다
- <정물靜物 1>의 일부-
<“일이 있는 한 나는 직립이고/ 내가 직립인 한 사랑도 영원하다/ 숙련도 끝내는 못질로 끝내고/ 못질이 영원한 한 직립도 영원하다”> ([너는 직립이다])라고 말하고, <“그는 마주하고 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줏대없이 놀아나는 것 같지만 바람만 바라는 것이다/ 중략/ 있으면서 없는 바람, 바람이 바람을 미는/ 그 중심을 향해, 천지사방/ 몸을 눕혀 돌고/ 도는 것이다 돌지 않을 때의 불안/ 돌면서 제 몸 중심잡기”> ([풍향계])를 통해 자신의 중심잡기를 확인하고 <“널 만난 적 있었다/ 중략/ 너에게 후퇴는 없다 다만/ 옆으로 비껴 갈 뿐”<게>이라고 말하고 “그리고그리고그리고로/ 이어지던 생은/ 그런데에서 한방 먹었다/ <중략> / 넥타이를 가슴에 대보듯이/ 댈 만한 접속사는 다 갖다/ 대보기도 했다 고비, 혹 주기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잡고 늘어져 보았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앞세우고/ 한 잔 하러 나간다“> ([생生 - 접속사接續詞풍으로])라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향해 <“서야, 한다”>([파 보면])고 외치고 있다.
3. 팍팍한 세월을 견디어 낸 자로서의 깊이가 더해진 눈으로
많은 시편들이 이러한 자신의 외롭고 신산한 삶과의 끊임없는 싸움의 일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그는 팍팍한 세월을 견뎌온 사람의 체취와 체온을 시속에 불어넣으며 시의 깊이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한다. 시집 말미에서 보여지는 그의 최근 시는 삶을 깊게 응시하며 오히려 담담히 자신과 타자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오랫동안 삶에 천착한 자만이 갖고 있는 지혜와 유순함을 시행의 이곳저곳에서 엿볼 수 있게 된다. <빈집을 헐면서>, <겨울의 중심>, <소나기 한 차례>, <거룩, 거룩, 거룩한 - 태풍颱風>에서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국수를 삶는>이라는 부분에서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수를 삶는 밤이다
일어나는 거품을 주저않히며
창밖을 본다 만개滿開한
벚나무 아래 평상에서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가 들린다
젓다가 찬물에 헹군다
누가 아들과 아내 떼어놓고 살라 안 했는데 이러고 있듯
벚꽃은 피었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에는 국수처럼 느린 슬픔이 있다
비빈 국수 냄비의 귀때기를 들고
저 벚꽃나무에 뛰어내리고 싶은 밤이다
저 별에게 국수를 권해볼까
국수가 풀어지듯
소주가 몸 속에서 풀리듯
국수를 삶는 내가
벚꽃에 풀리고 있다
국수가 에부수수
벚꽃처럼 끊는 밤이다.
- <국수를 삶는> 전문-
시인은 국수를 삶아 오히려 우리에게 대접한다. 그리고 만개한 벚꽃나무가 하얀 식구들을 평상에 불러 모아 국수를 먹으며 웃는 소리를 엿듣는다. 시인은 별에게도 국수를 권한다.
<국수를 삶는>이라는 시는 고단했던 삶의 전체와 아울러 인생을 통찰하고 관조하는 연륜이 더해지면서 시의 깊이를 더욱 확보하게 된다.
4. 국수 한 사발을 건네받아
윤관영의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은 무엇 하나 기우는 것이 없이 전체적으로 양질의 시적 균질성을 가지고 있다. 경험적 실감을 통해 확보된 윤관영 시인의 시편들은 자신의 근원적인 힘을 통해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자의 묵직함과 단담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윤관영 시인과 <글발>이라는 시인축구단의 미드필더로 함께 뛰고 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싸움이다. 허리가 약하면 모든 것이 약하다.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를 쓰거나, 축구를 하다보면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는데 그건 바로 체력과 스피드이다.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것도 허리가 단단한 한 시인의 체력과 스피드, 즉 근기와 삶에 대한 일관된 자세와 포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처녀시집이지만 내게는 시선집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단단한 허리를 무기삼아 끝내 주저앉지 않고 지금에 이 자리에 서 있다. 나는 그의 시집을 읽는 동안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돌이 어떻게 둥글고 예쁜 돌이 되는 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묵묵히 시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다. 시 쓰는 일을 온전히 혼자만의 일이라고 단단히 새기며, 난맥상의 시대를 굳은살처럼 건너왔던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다시 이 글의 말미에서 나에게 물어본다. 시인은 무엇인가? 라고 다시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한 시인이 벚나무 아래에서 거품을 주저앉히며 끓인 국수 한 사발을 허기진 손으로 건네받아 에부수수 들이킨다. 국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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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高榮敏)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악어>가 있음.
계간 <시선>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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