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오철수 시인의 내 시평/시월의 고요 본문

내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

오철수 시인의 내 시평/시월의 고요

也獸 2010. 2. 15. 11:46

  시월의 고요
        - 윤관영

 

    버스를 기다리는, 시방
    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에 둘러싸여
    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
    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
    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
    어깃장 놓듯 달리는 레미콘 소리도
    고요에 눌려 땅을 울리며 산자락으로 오른다
    그의 이명(異名)은 심심하다이다
    모가지를 돌리는 것조차
    그는 허락치 않는다
    휴게소의 암캐도 앞발에 턱을 묻었다
    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멀리,
    버스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에서

 


  시월의 햇살에게는 임무가 있다. 스스로의 살을 빼기 전에 지상의 열매들에게 마지막 제 몸을 쟁여야 된다. 그것은 급한 일이다. 햇살도 그 대상도 딴 생각을 할 수 없다. 딴 생각을 하게 되면 우주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모두에게 집중하는 시간, "고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방/ 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조차 익어간다는 느낌이다. 탱탱함이라는 느낌을 통해 시월의 임무가 서로에게 스민다. 그 집중! "고요에 둘러싸여/ 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 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 절대적 자연의 섭리가 제 관계의 선을 타고 흘러들며 충만한 시간이다. 그 마음을 알아, 혹은 그 뜻에 눌려 냇물 소리조차 "납작하다". 마치 '너의 임무는 지나갔어. 너를 달디단 과육의 즙으로 만들어야 해. 꼼짝 말아.'라고 명령하는 혹은 귀기울이는 시간이다. 그래서 "어깃장 놓듯 달리는 레미콘 소리도/ 고요에 눌려 땅을 울리며 산자락으로 오른다". 시방, 오직 시월 햇살의 절대시간이다. 세상 만물은 그것을 알기에 스스로 고요하다. "모가지를 돌리는 것조차/ 그는 허락치 않는다/ 휴게소의 암캐도 앞발에 턱을 묻었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시월의 고요"의 다른 이름이 "심심하다"이다. 다른 짓을 할 수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고요의 의미를 알고 있는 화자는 생각한다. "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버스조차도 시월의 이 고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버스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시방은 시월의 햇살의 고요한 제국이다. 그 성스러운 임무를 위해!
-글/오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