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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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 어쩌다, 내가 예쁜

첫시집 - 어쩌가, 내가 예쁜

也獸 2010. 8. 21. 08:51

 

|시인의 말|

 

 

(시는 발표 순이다.)

 

처녀시집이지만 내게는 시선집이다.

 

아들 민주에게 아비의 생이 허영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어 작은창자가 따듯하다.

 

2008년 봄

단양 下仙巖에서

윤관영

 

 

 

 

 

|시인의 약력|

 

윤관영

 

 61년 충북 보은 출생.

 94년 〈윤상원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96년 『문학과사회』가을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축구단 《글발》의 선수로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현재 계간 『미네르바』 부주간.

 99년 이주해 충북 단양의 하선암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체 치면서 外 64

 

 

평범하기로 쌀이 어떨까

아님,

덜 까진 현미는

턱 허니 가슴팍 열어젖힌 보리

깔끌한 게

자꾸 뜨물 게워 내는 보리는 어떨까

제 살 터진 뗑그런 콩

고소한 내 콩은 또 어때

잡것,

온전히 속살 터져 핏물 내는 팥

차라리 팥, 팥은 어때

 

아서라, 내

밥에 쌀눈을 보지 못하는 이들

혼쭐 한번 내주겠다

떡판 뒤집듯 뒤집어 보겠다

오진 꿈 꾸었노라

쌀도 현미도 보리도 좋지만

콩이야 팥이야 말도 많지만

차라리 내 찹쌀이 될란다

날 쳐

날 녹여

남 끌어안는 찹쌀이 될란다

애꿎은 체만 탁탁 쳐대는 시절에

오오

 

 

 

 

 

추일서정

 

 

턱 괴고 앉아 찌를 보노라면

물고기 사는 꼴도 자못 궁금한데

잠자리는 또 찌를 간질인다

 

턱만 들면 눈에 꽉 찰 들녘보다는

눈이 벌게 찌나 보는 게 일이지만

월척의 꿈도 꿈이나 세상을 낚고 싶다

 

고요한 수면에 고요한 바람

홀로 불타는 찌, 그래서

뜬금없는 생각만 입질처럼 흔들린 탓이겠지만

 

나도, 찌처럼 예민한 촉수이고 싶다.

무한 탄력의 낚시대이고 싶다

한번 결단하면 끝장을 보는 바늘이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곧추 세운 눈초리로 집중 집중 또 집중해야겠지만

엉덩이 짓무르게 세상을 낚고픈 것이다 여기는

꿈쩍 않는 찌를 미는 바람도 서늘한 낚시터

 

 

 

 

 

깨를 볶으면서

 

 

지구상의 사람보다도 많을 듯한 깨들이

쇠솥에서 제 몸을 태운다

발목을 내려치고 허리를 올려치는

쇠날에 깨는 돌아간다 물결친다

반 박자 간격으로 후려치는 쇠날에

섞여지는 깨는 섞여질지라도

거개의 깨는 층이 진다 결을 이룬다

타는 놈만 타는 것이다

 

불 조절이 한 요령이지만

물기를 싹 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래도 층은 있고 결은 있는 것이다

그저 주걱을 움켜쥐고

위아래로 물 푸듯 퍼야 층도 결도 녹아지는 것이다

손때가 묻어야 하는 것이다

잠시금 주걱질은 다시금 결이룸,

역류는 계속 되어야 골고루인 것이다

층도 결도 녹아지는 손질이 대를 이어야

참 기름이 진짜 참기름이 되는 것이다

 

 

 

 

 

한낮의 태양

-고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장이 시작된다/니체

 

 

살아서,

살려고 시장 간다

거부는 제 아름의 遮陽을 친다

수입 가짜 양식 혹은 재배가

발바닥에 찐득찐득 붙는다

햇살은 차양 모양으로 잘라진다

미꾸라지는 서로의 속으로 파고든다

아스팔트 위의 붕어는 고독하다

아가미엔 산소과잉이다

눈동자에 햇살이 볼록으로 반사된다

비늘 몇 개는 햇살을 고스란히 투사한다

고독은 무장해제에서 나온다

교차되어 告由하는

꼬리지느러미와 엄지검지의 악수

다들 할 말은 있다

고독은 생명을 걸어야 고독이다 누군들

한때 목숨을 걸지 않았으리

붕어는 머리부터 수직으로 낙하한다

오늘도 은전은 생색을 낸다 교묘히

생명이 부지되면 고독은 허물는다

텅― 수면 그 밑바닥으로 쑤셔 든다

시장이 끝나는 곳 고독이 시작되는 곳에

고독이 다시 비늘을 털고 있다

발바닥이 눅진눅진하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그저 졸립다 피교육―

추억은 추억할 수밖에 없어 추억인가

시큰둥한 눈에 든 너, 너는

라면발처럼 엉긴 뿌리가 마른 채

화분의 모양과 크기를 드러내고 있다

고무적으로 적나라하다

흙보다 많은 뿌리

아래로 뻗던 뿌리가 위로 솟다,

다시 아래로 가고 또 다시 위로 뻗어도

끝내 플라스틱 화분을 뚫지는 못했다

억울한 죽음은 마른 잎새마저 못 놓는다

산 너는 죽어도 죽은 화분은 산다

살아 다시 산 것을 죽인다

산 것은 죽으면 시체요, 죽은 것은 내내 유용하다

가둠이나 소유, 그것은

욕심만치의 관심을 요한다

욕심은 죽음이요 죽음은 영원해서

유한한 생명은 다만 유한하다

메두사의 생명력도 방패 같은 햇빛 앞에선 안 된다

그래도 넌 네가 품은 흙덩이는 죽어서도

한 줌 남기지 않고 끌고 간다

 

여전히 쟁쟁한 햇빛―

추억도 억울한 추억이 질기다

 

 

 

 

 

 

 

널 만난 적 있었다

톱밥 속에서 배때기를 드러낸 채 다리를 떠는 너를

굴비처럼 엮여 화석처럼 말이 없는 너를

그런 널 만난 적 있었다

오늘 영종도 시장에서 만난 너는

탱크처럼 전신에 갑옷을 두르고

탱크는 여덟 개의 발을 달았다

너에게 후퇴는 없다 다만

옆으로 비껴 갈 뿐

관절을 구부린 채

우주의 절반은 안을 듯 일어선다만

네가 선 곳은 고무함지 안

네 발에 네가 걸린다

양수 같은 고향 뻘 그리는 갈증으로

거품 물고 눈동자를 돌린다만

여기는 다만 다만 함지 안일 뿐

천하무적 집게도 이제는 무거운 육신일 뿐이어서

배를 땅에 댄다 눈동자만 돌린다

마주친 눈 촉각만

삼백육십 도로 돌린다 너는 ―

 

그런 널 만난 적 있다

 

 

 

 

 

나는 직립이다

 

 

떡판을 들자면

바벨을 드는 느낌이야

어깨만큼 다릴 벌려 허릴 굽히면

엄지 손톱에 오는 촉촉한 감

한호흡 정지시키는 그 때

 

그 때 나는 직립이다

 

장딴지를 거슬러

무르팍 관절을 타

허벅지 근육이 불룩이고

괄약근이 옴싹 잡히고

허리에 찌잉한 전류가 흐르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직립이다

 

일이 있는 한 나는 직립이고

내가 직립인 한 사랑도 영원하다

숙련도 끝내는 못질로 끝내고

못질이 영원한 한 직립도 영원하다

살을 내는 활 같은 탄력의 허리가 팅팅한 한

 

매 순간순간 나는 직립이다

 

 

 

 

 

감자

 

 

널 보고 있다 水盤 위

물 속에 담겨 비밀한 생식이 적나라한

널 보고 있다 물은 모든 싹의 起點이다

먼지도 생명에 일조한다 널 보고 있다 아니

널 보고 있지 못하다 觀淫症도 적나라한

노출 앞에선 맥 못 쓴다 두개골 밀고 올라가는

몸통이 투명한 콩나물도 삼베천이라도 씌워야 큰다

(생명 앞에 인간이 갖출 최소한의 예의다)

생식의 비밀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물을 흐리는 비밀한 막

완벽한 無爲而化― 눈은

싹은 들어간 데서

몸의 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온다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솟는 줄기

어떻게 흔적도 없이 구멍에서 솟는가

국수가락처럼 늘어진 뿌리 무엇이

줄기이게 하고 뿌리이게 하는가

널 보고 있다 쪄도 아리던 껍질

등 푸른 서슬로 사는 너

게거품 같은 녹말을 몸통 한구석에 단 너

감자도 모르면서 감자를 먹이던 내가

그런 내가 널 보고 있다

보고 있지 못하다

 

 

 

 

 

자목련

 

 

그렇게 가더이다

 

단단한 머리 위

더 단단한 송아지 뿔처럼

내게서 피어나

상아처럼 굳을 것만 같더니, 피어

새끼 제비 아가리 같은 姿態이더니

그 부리 속 혓바닥 같은 수줍음이라도 있더니

치마 입고 선 물구나무처럼 화끈히

몸 열어 젖히더니 간밤에

비바람 맞아, 탯자리

그마저 쓸어내더니

자, 목련 그렇게 가는구나

갔구나

 

 

 

 

 

靜物1

 

 

늦추잡은 줄에 매어져

기우뚱, 땅에 배를 댄 나룻배 한 척

누운 각 중심엔

추 같은 진흙 한 무더기

그 위에 치모처럼 솟은 잡풀들

흔들리고 있다

수명이 다 해도 배는

물이라야 바로 서는 것

노가 빠져나간 고리

엄연한 앞뒤 자리, 배는

기울어도 강으로 기운 것이다

바다만 바라는 것이다

하초가 얼어붙어도, 짐에 사람에

묵직할수록 뱃구레 깊숙이 간질이던 물살, 그때

물은 가르라고 있었다

이제 밀어내는 물,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듯한,

몇 번 뒷걸음이면 닿을 듯한, 거리는

파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그 물에서 중심잡다, 그 채로

그 속에서 가라앉고 싶은

눈빛이다

 

 

 

 

 

풍향계

 

 

그는 마주하고 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줏대없이

놀아나는 것 같지만

바람만 바라는 것이다

그런 그다. 바람이 놀다온 자리,

묻어 온 내음도 훔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투명하면서 불투명하고

있으면서 없는 바람, 바람이 바람을 미는

그 중심을 향해, 天地四方

몸을 눕혀 돌고

도는 것이다 돌지 않을 때의 불안

돌면서 제 몸 중심잡기―

하나이면서 아닌 바람을 향한 그의 고투는

사시장철,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되고 있다

창에 찔린 물고기 같은 형상…

 

그를 보려면 올려다 보아야 한다

바람을 보려면 그를 보아야 한다, 허나

그는 단 한번도 같은 모습이 없다

 

 

 

 

 

-接續詞풍으로

 

 

그리고그리고그리고로

이어지던 生은

그런데에서 한방 먹었다

생의 과거가 새끼처럼 꼬이면서 출렁거렸다

그때 그러나가 고개를 들었다 생은

또 생이니까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러니까, 물음표가 옆구리를 찌르고

느낌표가 찍혀서야 생은

구두끈을 매기도 했다

생은 또 생이니까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가슴에 대 보듯이

댈만한 접속사는 다 갖다

대 보기도 했다 고비, 혹 주기마다

도가니 같은 연륜이 쌓이면서 생은

자신이 별 거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한잔도 하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다가 이럴 수는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잡고 늘어져도 보았다

대 볼 만한 것은 다 갖다 대 본 끝이라

맨 속은 터수라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믿어 보기로 한다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 배신이라는 것을

그런, 접속사도 끌어댈 나름이라는 것을

안 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게 당할 것을

준비한다 그러나 물고 늘어질 것이

그밖에 없는지라 제 앞에 그를

세운다 답이 없는 문제지를 받아든 것을 짐짓

감 잡은 생은 담배를 꼬나물고

진지하게 고민(하다가)하는 체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앞세우고

한잔하러 나간다

 

 

 

 

 

짐승, 코가 긴

-대잠리4

 

 

  심심하면, 저는, 송아지 보러가요 범수네 牛舍엔 들어가 보지 못했어요 형수님 말씀이, 팔 때 보면 다 큰 소가 허공을 밟는 것 맨치로 겅중겅중 걷지도 못하는 게 불쌍해 죽겠대요 응달 마을 황씨 아저씨네 소는 새끼를 낳아서 엉덩이가 까칠해요 아무래도 제 발길이 멈추는 곳은 유씨 아저씨네 송아지 앞이에요

  김이 물큰물큰 나는 여물 먹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해요 느긋하게 허공을 씹는 듯한, 제 입의 침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고요의 되새김질 앞에서는 손이 잘, 안, 나가요 황씨 아저씨네 소를 볼 때가 그래요 여물 먹는 데 열중하는 송아지를 보면, 열중을 틈타 콧잔등이를 쓸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앞서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보면, 주둥이가 길다 싶기도 하고, 턱이 길다 싶기도 하다가도, 콧구멍 벌름거리는 걸 보면 코가 길다는 생각 들어요 정작, 콧등은 쓸지 못하고 뿔 사이 가마나 긁적대다 말지만, 코가 긴 짐승은 아름답다는 생각, 진짜배기 웃음은 코로 웃는다는 생각 들어요 콧등에 맺힌 땀처럼요 ―

 

 

 

 

 

빈집을 헐면서

 

 

빈집은 못부터 삭는다

묵밭이 된 마당

키를 넘는 명아주대

덜컹거리는 문짝이라도 잡은 못은

녹이 덜하다 반쯤 박혔을 땐

제 몸 휘게 하는 무게를 매달지 못하면

대가리, 아니 모가지 먼저 삭는 법

이미 나무가 된 명아주 밑동은

낫질이 잘 안 먹는다

적막한 빈집에도 세월의 흔적은

저 못처럼, 서까래에 대가리까지 푹

박혀 살면

온전할 수 있었을까

안경알에 떨어진 땀을 면장갑으로 닦으며

사내는 장도리를 옆으로 눕혀

구부려 구부려 못을 뽑는다

 

 

 

 

 

볕 좋은 봄날에

 

 

뭔 힘이 밀어 꽃잎은 나오느냐

나오면서

나오면서

피어나느냐

 

뭔 힘이 밀어 태깔마저 밀어내느냐

볕 좋은 봄 한날

내 오줌 누던 모습, 정면으로 지켜보던 흰둥이랑

쪼그려 앉아서

흰 배꽃을, 분홍 복숭꽃을

한나절 보고 있었어라

 

삼 년 전 꽃나무 심은 내가 갸륵해서

거름마저 파묻은 참이어서

앞발 드는 흰둥이 목덜미를

쓸어주는데,

 

내 몸에선 뭔 힘이 밀어

이리 눈물나는 것이냐

 

 

 

 

 

소나기 한 차례

 

 

바람도 비에 젖은 바람은

이리 시원타

비에 자리를 내 주고

몰리고 몰려서 원두막을 채운 밀도

날파리들이

비와 원두막 사이, 추녀 그 경계에서 분주하다

빗방울 한 방이면 추락할 그것이 용타

호미를 곁에 놓고

무르팍 오그려 잡히는 대로 눈길 두는

이 잠시잠깐,

 

그 동안, 참 가물었다

 

 

 

 

 

길 위에 길

 

 

머리 속에 뭘 넣어야 한다고

대가리 처박고 신문이라도 보던 시절 지나니,

보인다. 노란 盲者의 길

강박의 길 지나니,

오돌도돌한 직선과 직각의 길 보인다

무료와 권태 속에 있지 않으려던

억지 집중을 지나니,

힐끔힐끔, 힐난의 눈길도 받는,

딴청이 날 보게 한다

색으로 난 길과

몸무게를 직접 받는 굽과

두툼한 발바닥 ―

말초신경이란 말을 괜히 알 듯도 하여

헛웃음 참으며 또 힐끔거리며

발가락을 빨아도 아름다운 그대

뭐, 이런 속스런 생각에 기분이 동해

그런 애인이라면 뭐 하면서

이 때는 전동차 창밖을 보게 된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앞자리 여인을 흘끔거리며

 

 

 

 

 

겨울의 중심

 

 

눈 하도 탐스러이 내려

비디오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네

날 村스러운 데까지 데려가는 겨울, 함박눈

 

별수 없었겠지

맑은 하늘을 지운 게 저였고

제 품에 놀던 새떼들을 쫓은 게 저였으니까

 

얼구고,

떨구고,

빈 가지마저 그냥 안 둔 저였으니까

 

광폭의 끝간 데에서는

저도 별수 없었겠지

저를 풀어내는 수밖에 없었겠지

 

너무 느려

차라리 수직인

함박눈 내리네 이 겨울의 중심에

 

 

 

 

 

옛날, 일설(一說)에

 

 

  경도를 치르는 무녀(巫女)는 신통력을 갖기 어려워, 그래 아기보살을 몸 어딘가에 지닌다는 설이 있는데, 초경이 한참이나 전인, 어리나 똑똑한 여아를 독 속에 집어넣는다는 설이 있는데, 그 속에 왕소금과 은방울을 넣는다는데, 이건 설이 아니라는데, 컴컴한 속에서 소리치다 배고프고 목말라 소금을 먹는다는데, 두려움 속에서 은방울을 가지고 놀다 기갈 속에서 운다는데, 울다 기진해 죽는다는데, 죽어 혼령이 은방울 속에 들어간다는데, 이건 순전히……, 영영……

  태초(太初)에 설을 이룬 무녀가 있었고, 그런 그녀가 긴요(緊要)한 사람이 있(었)다는데……

 

 

 

 

 

벌마늘

 

 

벌어져서 벌마늘 이라는 그놈은

볼썽 사나웠어요 접으로 엮여 있어도

영 폼이 안 나더라고요 엄만,

참 좋은 마늘이래요

한 쪽이 한 통 되는 마늘 농사

별것이래야 농사짓는 것은 아니지만서두

가족끼리 둘러앉아 떼어 내는데,

그놈 참 예뻐 보이데요

거죽 하나를 사이로 내가 통통하면

다른 쪽이 찌그러드는 게 마늘인데,

놈들은 각기 벌어져서 동글동글해요

흙을 몸 가운데 받아 마늘대를 밀어 올렸다니,

흩어져 하나인 그놈들은, 떼어 내는데

뿌리 쪽이 딱딱 부러지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각자 벌어졌어도 거푸집 같은 외피는 또 여전하고

스스로 通風해 썩지도 않고, 해서

대를 축으로 한, 벌사람이라는 게 있다면

거 괜찮겠다고―

나야, 내내

손톱 밑이 좀 아렸지요, 뭐

 

 

 

 

 

새의 자리

 

 

나무 심고 있는데

망치로 손가락을 얻어맞은 충격처럼

새가 동공 속에 앉았다 휘청,

산수유 가지가 휜다 부리가 짧은, 가슴이 누런 새는

내 눈빛이 밀어냈다 새는 주둥이로 공기를 뚫으면서

온몸으로 밀더니, 다르륵 한 차례 날개를 떨더니

또 몸을 던진다 손톱 점점 검어진다

찢어져 밀린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나온다

굽은 것은 완강하다 뚫는 처음은 날카롭다

角, 저마다의 힘

뭉툭한 것일수록 몸무게가 힘이다

뿌리를 덮은 흙이 공기를 다 밀어낸 것은 아니듯

공기가 심긴 주목나무를 무조건 누르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나무는 눌리겠지만 눌림을 누르면서

누름이 즐겁도록 밀어갈 것이다

아픔에 겨워 손가락을 빨 듯

잡은 곡괭이 자루에 새의 자리가 잡힌다

 

 

 

 

 

어떤 봄, 벚나무 아래

 

 

절 덮은 눈 빨아들이도록

애절했으니, 大地

저도 별수 없었겠지 스물스물

연신 내리누르는 大氣

뚫자 수작할 수밖에 없었겠지 똥구녁

찔린 대기 또한 견디다 못해 나무

각질 사이라도 파고들었던 거겠지

뿌리가 근지러웠던 벚나무는, 그래서

두서없이 꽃 먼저 매단 거겠지

벚나무 아래, 두서없는 충돌들 속에서

그래서, 나도 두서없는 거겠지

기억의 지층을 파고들어, 始原의 암호 같은

손금은 갈라져, 지문 끝에 감겨드는 거겠지

날 둥둥 뜨게 하는 봄中中

대책없이 꽃잎 지고 나서야,

속았다 양철 같은 이파리를 내밀겠지만

지금 벚꽃 아래 나는

성질 부릴 건덕지조차 없는 나는 차라리

두서없어 황홀쿠나

매달 것 없어, 쥐어지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어질머리 이누나

이 봄,

벚나무 아래

 

 

 

 

 

9월 장미

 

 

딱, 세 송이 달았구나

9월 장미

20층 아파트 뒤꼍 화단

볕이라곤 없는, 바람도

그림자를 물고 가는 곳에서

미처 가시도 안 아문 것이―

웬 광채냐?

허공을 헤집는 집요한 손짓처럼

고사리 같은 끄트머리에

튀밥처럼 터져 나온 새붉은 것을

달랑,

단 것이냐?

빼문 혓바닥이 녹도록

놓지도 못할 거면서

 

 

 

 

 

파 보면

 

 

진공의 파란 몸피

거꾸로 박혀, 참다 참다 뱉어낸

숨결이 밀어낸 불만 같다

흰 뿌리의 반란 같다

가운데 줄기, 그 끄트머리에

매달린 파꽃

줄기의 숨결이 밀어낸

풍선껌 같다

오그려 감싼 그 안,

오롯한 수술들

편안하다

거죽이 줄기인,

수직의 살결들은 끄트머리로 모여

갈색으로 봉합되었다

몸피가 터지거나 부러지면

그대로 녹아 흙빛이 된다

거죽일수록 찌를 듯,

서야, 한다

 

 

 

 

 

늑골이 아프다

 

 

태고 적, 비 내린다

낙엽송 이파리에 부서지며, 가살가살

안개로 오른다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비 오시는 중이다

나무는 雨氣마저 몸통으로 빨아들여

배앝는 중이다

바위도 비가 이마를 넘칠세라

제 혈관을 열어 젖는 중이다

땟물로 닳은 마룻장도 이 때만큼은

온전히 습해보는 것이었는데,

이 현재적인 진행들 틈에서

내 늑골도 젖는지

자꾸 한숨이 나왔다

마당엔 비 한 방울 고이지 않고,

온전히 젖어 숨쉬는 그 틈바구니에서

우정 담배를 물 수 없었다

 

비 오면, 어느새

응달마을 황 씨네 마룻장으로 간다

가서 나도 진행 중이 된다

 

 

 

 

 

거룩, 거룩, 거룩한

―颱風

 

 

그 때 나는 그를 코앞에서 맞은 격이었다

제 속에 비를 심었을 때의 그는

위압적일망정 빠르거나 사납지는 않았다

맨몸 저 혼자일 때 그는

소리로 제 길을 내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 눕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그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었다

집 모서리 돌면서 멍이 들고

추녀에 갈라질 땐 소리내면서 울었다

지붕에 부딪칠 때 그는

슬레이트 용마루를 뜯어 올리면서

몸을 꼬아 휘몰아쳤다 사실,

내가 그에게 용서받은 것도 그가 밀 때

몇 발자국이라도 뒤로 밀리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비를 속에 심지 않는 그는

소리를 심은 채, 낙엽과 검불과 비닐과

비닐하우스와 고춧대와 빨래를

그의 내부로 빨아들이는,

—심술, 그런 심술이 없었다.

나는 그의 심술 앞에

그나마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고

몇 걸음 또 물러서면서 바위 곁으로 피했다

바위가 둥글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만져졌다 멀리

포기한 눈에 나무들이 미친 듯이

바람 쪽으로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저렇게 온전히 심술에, 상처에

비위를 맞추는 움직임이 있었다

저렇게 길게 상처의 소리까지 받아내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산 전체가 능선을 자꾸 낮추면서

바람에 자신을 맞추고 있었다

나무는 넘어져서도 잎과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저 거룩, 거룩, 거룩한, 손길들 속에

나, 살고, 있었다

 

 

 

 

 

방앗간, 랩 포장

 

 

사각―

지이익―

엷디엷은 랩을 가위로 자르다

문득,

내 살가죽을 포로 떠어?

글면?

설탕 녹은 물이지만

꿀떡엔 꿀이 들었고

바람 든 바람떡엔 귀신도 피해가는

팥덩어리가 바람과 놀기라도 하는데,

— 머리통이 바람을 일으킨다

랩을 죽죽 늘여 붙이다 붙이다, 쓰윽

랩뭉치를 드니,

야아 이걸로 한 방 치면?

히히, 그러면?

햐? 이 엷디엷은 것도

공기 방울 하나 안 들어가게 말리니 힘 써?

힘 쓰는 것이 풀리니 이리

살갑게 덮어?

흐흐, (가위 든 손으로

이마를 쓴다)쓸다니?

 

 

 

 

 

시월의 고요

―대잠리1

 

 

버스를 기다리는, 시방

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에 둘러싸여

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

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

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

어깃장 놓듯 달리는 레미콘 소리도

고요에 눌려 땅을 울리며 산자락으로 오른다

그의 異名은 심심하다이다

모가지 돌리는 것조차

그는 허락지 않는다

휴게소의 암캐도 앞발에 턱을 묻었다

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멀리,

버스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그냥 있는,

-torso

 

 

座臺에 올려져

그냥, 있다

살의 살,

먼지를 닮아가는 살색

눈도 없는 斷頭의 몸이

정면을 보고 있다

단수, 단족의 단세포

밋밋한 가슴, 도시

핑계거리를 주지 않는다

무언에 무표정, 무반응,

맨가슴

이러언 ―

슬그머니 손톱으로

똥똥똥 치면

빈 속의 말…

이걸 그냥,

패대기치고 싶은 —

 

그걸로

넌, 날, 끈다

 

 

 

 

 

말린꽃

 

 

발목 잡힌 장미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미라처럼

과거를 드러내는,

죽은 그 시점을 반추하는,

몽오리로 끝나버린 육신

흐르던 氣가 막혀, 막힌 기가

죽어도 놓지 못한, 그 분노가

그대로 오그라들어, 향기마저

풀 새 없이, 버티다 버티다

몸의 물기를 죄다 방출한,

생을 증거하는, 저—

황홀한 시체 다발

 

 

 

 

 

탄내가 길을 내다

 

 

착한 것은 해골마저 착하다

 

주인의 살기 앞에, 누런 개는

이빨 드러내지도 으렁거리지도 않고

쉬 목덜미를 내줬다

똥구녁 땅에 끌리도록 버팅기지도 않고

몸 낮춰, 지나치며 다른 개들

침을 몸에 받을 뿐, 어깻죽지가 솟도록

궁둥짝이 솟도록 다만 등허리를

골 지게 낮추고 낮춰 끌려갔다 올가미 걸린

머리통 어깨보다 낮았다

무리 없는 순서는 무료했다

열십자로 묶인 개발바닥을 따로 보관되었고,

끝내 죽음은 제 무게로 왔다

착한놈은 죽음마저 착해서 별 요동이 없었고

산소불로 지져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만 그 몸을 감싸 안았던 누런 털만큼은

검게 노린내의 길을 내었다.

뼈 국물까지 빠진 해골은 착하다 못해

인자한 미소까지 품고 있는 것이어서

삽에 얹어 거름자리로 가던 나는 그만,

볕 좋은 곳에 모셔놓고

절까지 하고 싶어졌다

 

탕이 끓던 김의 길이

고개 든 내 입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몽당싸리비

 

 

바람 맑아 칼칼한 날, 팥죽솥을 걸었네.

 

그늘엔 두툼한 눈덩이 쌓였는데

 

통장작에 앉아 불을 지폈네.

 

아랫도리부터 된통 한 번은 비틀어 올라가야,

 

끝장을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지랑싸리비

 

막대기가 된 싸리비,

 

묶은 칡은 풀리지 않았네.

 

발매치와 대솔장작을 몸 위에 얹고서,

 

신문지 한 장으로 제 몸을 불사르는 비움

 

또깡또깡 끊어지면서, 쉬 재가 되었네.

 

젖은 부지깽이도 그을리며 불타올랐네.

 

맑은 재 된 다비식이

 

팥죽 속에 새알을 남긴 듯해

 

보리 밟는 걸음으로 주걱질을 했네.

 

뭉근한 불땀 속에 나무주걱질은 귓바퀴를 닮아

 

귀신의 길을 알 듯도 했네.

 

 

 

 

 

육체의 기억

 

겨울비 오는 저녁 무렵

당구장 하는 친구에게 갔다.

들고 뜯거나 싸 먹기 귀찮아 시킨,

부대찌개를, 데우면서

소주를 마셨다

이 년 넘게 당구장을 해도

구력 50이 늘지 않는, 이미 잡스러워진 두 몸은

그 시절,

연습구만 쳐도 늘던 한때를 추억했다

그 때 150 치던 다마는 지금도 150인 육체를 고집하고 있으니

그러니, 육체의 기억은 자동화된 습관

기억이 전무하던 그 때, 친구를 따라와

당구장 한켠에 큐대처럼 서있던 여학생

친구만 보면 웃던 쓰리 쿠션 같은 웃음 떠오른다

붉은 당구알만 했을 아이는 어쨌던가

창밖엔 진눈개비 내리고

다 실패하고 장가들만 잘 갔다는 그 큐질 너머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햄처럼

짜게 될 일만 남은 육체는 퉁퉁 불어 올랐다

차마 묻지 못할 육체의 기억이 기어나와

연방 소주를 마셨다

 

인제 추억을 만들 수 없는 잡스러워진 몸들이

기억만 점점 분명해지는 몸들이,

셋째 주 토요일, 는적는적 기어든다.

모여들고 있다.

 

 

 

 

 

따지기

 

 

언 자리와 마른 자리를

제 속에 두는 게 봄이다

비닐하우스, 그 문턱이 봄의 중심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보온 덮개가 있다

이제 막 상토를 밀며 나오는 고추 모종들

들락날락하는 내 걸음에

시루떡 같은 흙이 들러붙는다

이 불화의 걸음걸이,

장화 코를 차대며 해찰하다가

돌팍에 진흙을 떼어낼 땐

주걱에 묻은 밥풀을 앞니로 긁는 것 같았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또 비닐하우스

그 안에 노란 백열등을 밝히는 마음

일 마치고 장화를 벗어 털었다

바닥에 부딪는 장화의 타격음

꽃샘바람에 올라탄다

떡잎처럼 떨어져 내린,

내 발바닥의 비밀한 상형문자

그제서야 보았다

지구의 봄 소식을 장화로 타전하고는,

 

 

 

 

 

그 자리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운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어미닭이 부리로부터 (들었다 놓았다 쉴 새 없던 그 눈동자) 목덜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부터 가슴털로부터 알에 맞춤하게 제 몸무게를 들어올렸을 두 다리로부터 끝없이 옴직거렸을 미주알 그래서 짧았을 꽁지, 그래서 제 몸이 반원을 정확히 그렸을 둥우리로부터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춘설(春雪)

 

 

마을 입구 길은

모두 모여서 눈을 치운다

채 열 명이 안 되는,

세수도 안 한 얼굴들

무당바위 아래는 쇠응달에 비탈이다

회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넉가래질을 한다

가을에 떠난 사람 아직 멀리 있는데,

입구까지는 좀 멀다 치울수록

봄은 멀지 않은데, 와다닥닥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 큰 가지 하나

부러진다

넉가래 자루를 턱에 괴고

다들 그 나무를 본다 그게 어디

늘 푸르고 버릴 줄 몰라서만 이리

젖은 눈은 넉가래에 붙어서도 잘 털어지지 않는다

다, 봄이 가까운 탓

 

봄맞이도 저만은 해야지 싶다

 

 

 

 

 

car論

—뭔 차가 이리 깨끗하냐는 경우가 있다. 차 가지고 할 일이 뭐 있겠어. 카섹스나 하는 거지 할 때가 있다.

 

 

이 쇳덩어리가, 차 차 차

이 살상무기가, 스피드나 내는

정신머리 없는 이것이 응응하는데

쓰인다면 제대로 쓰인다고 봐야지유—

 

(큰 차야 그래서 폼나는 거지유. 썬팅! 얼굴 들이대도 안 보이게 진하게 하고 싶지유 되려 의심 살까 봐 못 하는 거지)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가서

그 풍경 속에서의 일이야 사랑뿐이겠지만

(다른 일 하실 분은 하시구)

 

세차는 사랑을 위한

모든 가능성의 대비인 셈인데,

 

뭔 차가 이리 깨끗하냐, 정말 그래서 깨끗한 거 맞냐

묻는

당신은

당연히 아니,에휴

 

차는 이동모텔

금방 지저분해지는 검은차는 사랑을 향한 나의 눈금

 

(내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내 차가 궁금한 당신은 아니라니께 그러유 그러길)

 

매연에 소음에 공해 덩어리인 이것이

고로초롬 쓰일 수 있다는 것에서

인류의, 존립이 희망적이다 빵 빵

 

 

 

 

 

酬酌 걸고 싶다

 

 

학원 논술 수업 끝나면

야간 수업에 지쳐서

카페 나무물고기에 가게 된다

 

혼자

오래

있다

보면

 

다기주전자에 심어 있는 양란에

술 한 잔 주고 싶다

마시던 술 붓고 싶다

 

蘭은 첫사랑 그 애처럼 놀라겠지

그러다, 흙과 양분에 걸러진 술맛에 취해

내심, 날 기다릴지도 모르지

 

흙과 양분에 걸러진 술을

난이 소화해 뱉어낸 술을

주전자 꼭지에 주둥이 대고 빨고 싶다

 

쌀알마냥 돋아난 난뿌리가 걸러낸

난의 증류식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그러니까, 첫사랑처럼 난에게 소주 가르치고 싶다

쥔은 난리를 치겠지만 난은 말이 없을 테니

준 술 내가 다시 받아먹고 싶다

 

 

 

 

 

사실이거나 이미지거나

 

 

수다의 중심엔

술병이 있고 술잔이 있다

 

  언니는 것도 모리나? 몸통이 병처럼 딱딱해지지 않더나? 하안 십에서 십오 초, 머시라? 응? …것도 모리나? 머라까? 맞다 맥주 병마개처럼 쪼인다 안하나

 

육포와 잣알들

테이블엔 안 딴 맥주가 두 병

딴 맥주가 한 병, 테이블 아래엔 빈 병이 네 개

 

흔들리면 스스로 차 오른다

(絶頂의 왕관 현상)

병마개는 병 깨지게 물지 않아도

술은 안 새고, 이미 젖혀진 병마개는

다시는 조일 수 없다

 

딴 병마개 안쪽을 누르니 잘깃잘깃

튀어 오른다

수다의 중심엔 사람이 있고,

사람의 중심엔 술이 있고,

 

병마개는 술은 조이진 못하고

……

테이블 아래엔 발이 여덟, 빈 병이 다섯

하나는 넘어져 있다

 

 

 

 

 

오늘 어때?

(제대 후 르포 쓰러 화순 적벽강 갔을 때 여자 후배 동행했을 때 미리 수음하고 잤었다. 아무 일 없었다.)

 

 

손 씻는다는 것을 의미를 알 것도 같은

지금은,

몸은 나른하고 눈의 기름띠가 풀렸다

여인이 건조하고 객관적이니,

여유까지 생긴다

―남자들 다 그렇지 않어?

이 혐의로부터 놓인 걸 내 몸이 안다

(오늘 어때?)

弄을 고백으로 들을 줄 알던 여자

그녀는 수줍음을 몸으로 말했던가 어쨌던가

진실은 우연을 가장하고, 어쩌다

그땐 나도 과장했다

허영의 탑

1마리의 성공을 위해서 1억4천9백99마리의 헛것이 필요하다는

버려지는 헛시간도 필요하다는

오 굳, 이 헛것이 지구를 굴리고 있다 아여

욕망 않는 나는

누군가의 허영의 탑을 잘 쌓고는 있는 거겠지이

지금도 지구는 잘 돌고 있다

아여

 

 

 

 

 

질통

 

 

저 것을 어머니는 왜

마루 밑에 모셔둔 것일까

질겨서 질통인가

프라스틱 통에 나이론 어깨끈

고정된 나사, 흰 당김끈으로 된 검은,

저것을 누군가 버리고 갔다

등 길이, 어깨 넓이

속에 새겨진

Happy Your Life

당신은 멋쟁이 덤프

좀 매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차버리고 싶은

질통이란 말 끝에 문득 여자의 몸이 떠오르는

나 같은 놈 참 대책없는 놈이긴 하지만

한 생 궁뎅이 서로 비비며 짓물러 보면 안다

질긴 게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흔들어 쏟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진저리 진저리 진저리

저것 지는 동안

겨드랑이에서 어깨로 만발하던 맨드라미같은 것

아아, 누군가 진저리치며 버리고 간 것이 분명한

저 검은 것을

어머니는 왜-

 

 

 

 

 

능이버섯

엄청나게 잘

 

  생겼지유 여북하믄 일능이 이송이라 하겠어유 요거이 회관의 스피커마냥 생기 먹어서, 크닥한 건 관 가차이 나가지만서두 다 그거이 땅에 뿌렁가지 박고 사니깐 그렇잖아유 땅 대신 하늘에다 대구 맺힌 거 소리 질르구 하늘이 땅에다 대구 하시는 말쌈을 귀담궈 듣는다구 능이(能栮)래는 거 아녀유 이 아자씨 좀 보래유? 다들 송이송이 하지만서두 송이두 소낭구허구 통해야 나는 거 아니래유 그래서 능이를 젤루 치는 기유 능이를 잘 생깄지유 거 머시다냐 하늘허구 땅허구 섞은 거 같은 때깔에다 우에는 우두두둘허고 밑에는 실 늘어지듯 한 것이 참말로 기가 맥히지유 이걸 우투케 먹는대유 장에 내다 팔아야지유 냉거지는 술 담그구 관둬유 맛 말은 하덜 말아유 큰 것은 배낭에두 안 들어간다니깐 그러네 그러기일 이 아자씨가 징말 영지 같은 거 빼믄 다 버섯이야 한 해짜리잖어유 아유 이 아자씨 귀까리 좀 뚫버야겠구먼

  알분 좀 그만 떨어유 다덜 몰러서 송이송이 하는 기지 달래 능이겠슈 능이(能栮) ……

 

 

 

 

 

봄밤, 깊은 밤

 

 

벚꽃이

프라이팬 개 물그릇에

들어 환한 밤에는

귀신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제게 맞는 몸 찾아 떠도는 영혼들이 보인다

그들과 나의 불통이었던 텔레파시가

내 늑골에

몰래 자리하는 거

잡힌다

 

(내가 밤중에 자작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이 때부터)

 

그럴 때 나는

댓병술로 앓는 늑골을 위로하며

모른쇠 해야 한다. 그러면

몸의 기운이란 기운 모두 빠져나가

꽃잎처럼 가벼워지고

나는 또 한해의 紅疫을 앓기 시작한다

꽃이파리들은 바람에 실려

프라이팬 테두리같은 세상을 떠돌지만

나는 웬지 개 혓바닥이 미는 주파수를 따라

피는 꽃잎들 따라온 듯도 하고

그것이 한 해를 온전히 견딜 이유가 된 듯도 하다

그래, 삶은

목하 진행 중이다

 

 

 

 

 

고구마

 

 

쇠스랑이 걸릴 것 같아

보니,

어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팬티가 보였다

 

고구마 캐려고

따라 나서다가

흙을 비집고 올라온 고구마를 본 것마냥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팬티 같은 얼굴이 뒤돌아 보았다

 

녹말을 거르고,

빻은 도토리를 치대던,

광목 같은 그 얼굴

 

흙이 찰지니까 고구마가 삐죽하다 야

옛날엔 고구마 이삭줍기도 있었다아

어머니와 이모가 고구마처럼 웃었다

 

기저귀 펼쳐 놓은 것 같은 하늘, 나는

멀찌가니 쇠스랑을 찍었다

 

 

 

 

 

축대(築臺)

 

 

  이런 축대 봤어유? 꼰 강철 안에 작은 돌멩이를 캐캐루 놔서 쌓는 축대 말이래유, 철사만 삭으면 뭉게질 끼 뻔한 것 같은 이것이 그래도 최고지유, 산에서 궁굴러온 바윗돌이 드리받어두 쿨룩 잔지침 한 번으로 지 허리에 그걸 심글줄 안다니께유, 공고리 축대는 깨져서 못써요, 꼴 같잖은 이 축대는 세월이 힘 이래유, 철사야 사그러지먼 그만이지만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로 바랭이가 집을 짓고 맘마꾸 홀씨도 날아와 뿌렁가지 박고 낭구 이파리도 쎄이구 하다 보믄 잔낭구도 지절루 자라서 지덜찌리 꽉 아물어 세월이 갈수록 딴딴해 진다니께유, 비바람에 추우 더우 해 달 별 머시다냐 그것들이 다가 힘 이래유, 샘물 뜨러 댕기다 보믄 뜸직한 이눔아를 자꾸만 씨다듬고 싶어지거덩유, 냉천(冷泉) 약수터에 한 번 와 보믄유 지 말이 맞는지 알꺼구먼유 시원한 샘물 한 쫑구리처럼 말이래유

  축대야말루 뭉그러져바야 지대루 알지유

 

 

 

 

 

풍경을 보면

 

 

물고기 배를 때린 바람의 등이 보인다

 

종마저 흔들던 바람 보인다

 

등이, 찢어진, 물고기

 

다시 구멍 뚫어 끼웠다

 

알자지에 세멘 가루 묻히던 손으로

 

꼬리가 내려앉으니, 입이

 

하늘 중심에 가찹다

 

저 꼬리 치는

 

저, 저, 저

 

 

 

 

 

국수를 삶는

 

 

국수를 삶는 밤이다

일어나는 거품을 주저앉히며

창밖을 본다 滿開한

벚나무 아래 평상에서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가 들린다

젓다가 찬물에 헹군다

누가 아들과 아내 떼어놓고 살라 안 했는데 이러고 있듯

벚꽃은 피었다

기러기아빠라는 말에는 국수처럼 느린 슬픔이 있다

비빈 국수 냄비의 귀때기를 들고

저 벚꽃나무에 뛰어내리고 싶은 밤이다

저 별에게 국수를 권해 볼까

국수가 풀어지듯

소주가 몸 속에서 풀리듯

국수를 삶는 내가

벚꽃에 풀리고 있다

 

국수가 에부수수

벚꽃처럼 끓는 밤이다

 

 

 

 

 

내 집에 내가 자는데

 

 

귀신의 잠꼬대도 들리는 새벽 3시

골아 떨어져야 마땅할 잠이

깨서는 다시 잠들 기색이 없다

다급한 풍경 소리는 고음의 무음이 되고,

 

소리에 싸이고 싸이면— 귀는

저린 발 풀릴 때처럼 멍해져서는

고요 고요 고요 그 극치에 다다라

제 귀의 속으로 들어간다

 

양변기 있어도 요강을 쓰시는 어머니처럼

새벽 3시의 모든 소리는 조용하게 크다

소리는 잠 쪽으로 밀어서는 소용 없는데

위풍에도 소리 있어 귓문이 서늘하다

 

 

 

 

 

오늘 하루 잘 살았다

 

 

피로가 썰물 파도치듯

발톱눈으로 빠져 나간다

저린 발이 풀리는 것마냥

발바닥이 펴지면서 알싸하다

하지감자를 캔

흙살과의 해종일

베인 살에서 핏방울 돋듯

그렇게 뒷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샤워 샤워 샤워)

 

수제비 반죽을 떼어 던지듯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니스 바른 듯하던 땀

안경다리에 소들소들 소금기

지독한 땀 내는 향수 내와 같다

누운 지금, 피로가

발톱눈으로

검은피 빠지는 듯하다

 

 

 

 

 

밥, 밥, 밥

 

 

누가 밥 먹었냐 물으면 고맙다

국 있는 밥을 먹으면 큰 대접받은 것 같다

밥솥을 양 발바닥에 얹고

김치와 콩장과 멸치에 김치 멀국을 부어

건듯 저어 먹는 밥은

저붐이 필요 없다

비빔밥은 맛이 아니고 그 종합이다

고마움에는 미각이 없다

형님, 콩국수 한 그릇하십시다

전화 받고는 울 뻔했다

누가 한잔 하자면 난딱 나간다

술은 저녁이다 박영근 형에게

소금 찍어 술 먹던 그에게 애가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느루 났다

빵 말고, 라면 말고, 중국집 볶음밥 말고

의림지 할머니집에

일밥 먹으러 가면 좋다

내가 사면 만판이고 가서

반주라도 한 잔하면

졸음처럼 밥을 끌어안은 위처럼

넉넉해진다 밥, 밥, 밥

 

 

 

 

 

꽃 4

 

 

술패랭이 꽃입살에 간질밥먹이거나

佛頭花를 눈 뭉치듯 조몰락거리는 것은

순전히 암띠어서 이다

 

꽃에 난딱 코를 박는 것도 그 때문,

꽃만 보면 무슨 꽃이든

이내, 이후가 보인다

 

예쁘다는 것은 그렇다, 지금 저 예쁨은

꽃나무가 들이 버티고 있는 절정,

절정엔 이후가 급박하다

 

꽃이기에 함부로덤부로 볼 수가 없다

꽃 감상이란 말은 언어도단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

 

꽃 이름 따져 외고

꽃과 꽃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불경한 일,

 

피어

花開나 流水

 

화주를 마신다

절정은 져 환하니까

후회막급이니까

 

 

 

 

 

굴뚝 하나 가지고 싶어요

 

 

굴뚝 하나 가지고 싶어요

굴뚝이 멋드러진 절은 霧深寺

 

황토로 기와를 쌓아 올리다가

말이 쌍붙는 걸 보고 물동이 밑창을 깼다는

그런 독을 올려놓은 굴뚝

그 위에는 새우젓독을 올린,

 

플라스틱 굴뚝은 좀 밋밋하고

됫박 같은 송판 굴뚝도 괜찮고

 

굴뚝을 보면 그 집 뒤란을 알 수가 있고

또 그 집 내력도 알 수가 있고, 굴뚝은

굴뚝새만큼이나 지레 친근한 것이어서

 

내가 하늘에 세운

내 坪數만큼의 神殿만 같아서

굴뚝만 보면 안절부절,

연기만 보면 다정다감,

 

달라붙어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을음은 또 왜 그리 친근한 것인지

물동이 같고, 새우젓독 같은

굴뚝 하나 가지고 싶어요.

 

 

 

 

 

전생, 보이다

 

 

암소가 오줌 쏘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떨어진 오줌발이

뒤꿈치에 닿듯

그 인연이 내게로 왔다

느린 화면처럼 풍경이 이동했는데,

옥수수 수염 같은 가리개를 매달고

육체의 최하단으로 욕망을 흘리던 나

간장에 절여진 마늘쫑 같은 머리를 하고

오줌 세례를 서서히

정수리로 밀면서 떠오르는

나의 전생이 보였다

습관적인 오줌 하나도 제 육신의 상부로 끌어올려,

제 힘의 근원인 꼬리를 들어, 쏘는

저 힘이기에, 나만한 애송아지를 쏟아내리라

솟구치면서 숨찬 숨을 토해 냈다

황금빛 오줌이 내 귓불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내 쏘면서, 한 번은 또 비틀어져야 하는

그 오줌 줄기 속에

햇살은 사금처럼 부서져 내렸고

갈색눈의 나는

…… 송치처럼 누웠다

그 곳엔 그 암소만한 그늘이 졌고

머리부터 떨어지기에 십상인 두엄더미는

그 배경이었다 근원부터

그 냄새였다

 

 

 

 

 

맞다, 엄살

 

 

불알에 땀 찰 땐

팬티를 한 번 뒤집어 입으면 좋다

물론 다 엄살, 아직은

살만해서 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세레스 한 대 분의 모래를

목욕탕 이층과 삼층에 올려 보면 안다

불알은 꽤나 얼굴 두꺼워 괜찮다

그 뿌리쯤 되는, 그 위쪽이 따끔거린다

여자로 치면 애 놓는 곳쯤 될 그 곳, 그래서

여자는 위대하고

한꺼번에 쏟는 땀일 양수가

제물에 이해가 된다

남대피 그런 노릇 아니어서

엄살이지만

거기 한 번 되게 쓰려

샤워 꼭지 대고 있어 보면

남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안다

코가 발등에 닿을 지경이 되어 보면

등짐 지고 힘을 써 숙여지는 고개처럼

여인이 존경스러워진다

버터 기름 등잔에

넓적다리뼈 소리, 보인다

일어서는 것의 그 뒤꿈치

 

 

 

 

 

꿀통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 먹는 놈이다

이 꿀통에는 꼴통의 냄새가 난다

집요한 나르시스의 냄새가 난다

칼로 허리를 치면

제 살 파먹은 흔적이 나이테 같다

뿌리부터 썩는 꿀통은 자살 광신도 같다

건드리면 부서져 내린다

진딧물 먹은 놈이 실상 실한 거지만

그런 것은 버려진다

한 땅 한 하늘 한 바람인데

같은 비료 같은 농약에 한 주인일 텐데

이런 꿀통들이 왜 있을까

뿌리째 뽑아서 들이켜고 싶은 꼴통들

꿀은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

이 꿀통에는 시인의 냄새가 난다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썩어

간이 되는 그 ……

몸통으로 칼 받는 그 ……

 

 

 

 

 

오우오우

 

 

남자가 내빼면 아래가 붙고

서면 가슴이 붙는다 오토바이 뒤에 여인은

허벅지를 오무려 남자 뒤에 붙는다

 

앞정 같은 <ㅗ>는 제가 눌러서는 헛방이다

<ㅇ>이 올라야 <오>가 된다

감탄이 된다

 

농로 가는 오토바이

하늘을 짚은 후배위 같은,

여인이 뒤붙어 완벽한,

아니 완전한,

 

턱을 어깨 위에 묻고

한껏 끌어안은, 여인이

넌떡 뒤돌아본다

 

등뒤로 전신을 밀고 들어오는

여인의 전면전

처분만으로

완전해질 때가 있다

오우 오우 예

 

 

 

 

 

똥점

 

 

밖에서 싸는 똥은 그저

함박눈 내릴 때가 최고다

엉덩이에 닿을 랑 말 랑한 눈

닿아도 기분 좋은 눈

똥은 눈 속에 묻혀

주변이 금색으로 물들고

김이 오르면

궁뎅이를 옮기면서 싸는 맛은

모종삽 든 마음과도 같았다

처리는 눈의 성격에 맞추었는데

쌀가루처럼 퍼지는 눈은 재처럼 손바닥에 얹어서

젖은 눈은 야구공처럼 뭉쳐서

처리하면 실도 끊을 듯한 괄약근이

걸음걸이에 따땃해졌다

눈 기운을 엉덩이로 받으면 한 해가 거뜬했는데

눈으로 불쩍불쩍 씻은 손속으로

내기 뽕을 치면 그 날은

쥐면 뽕이요 또이또이로 잘도 떨어졌다

뽕이야 여인네 손등 때리기 뽕이

자연뽕 쥔 것처럼 푸짐했지만

눈에 눈 똥으로

한 해 농사는 점쳐졌다

몸통 맞고 내는 북소리처럼

 

 

 

 

 

구뜰하다

 

 

비료 포대에 든 대파가 서름해 보이거나

도마의 칼자국을 손바닥으로 쓸고 싶어지는 마음이라면

바다가 보고 싶은 겝니다

콩나물라면을 권합니다

— 생수 4컵

— 라면 3/4개

— 콩나물은 라면 분량 정도

— 그밖은 입맛대로

눈보라가 치는 날은 구뜰합니다

소주 안주로도 삼삼합니다

海風에 실린 소금기가 씹히듯

무채처럼 끊어지는 국물 맛

콩나물이 익으면서 나는 비린내를

눈 냄새로 맡을 줄 알면

바다를 아는 사람이죠

깊게 눈보라만 보고 있으면

콩나물이 질겨집니다

물만 먹고 자라

물처럼 끊어지는 콩나 물

海水 먹은 듯

海水 먹은 듯

싶을 때

콩나물 사러 눈길 걷는 거

거, 서근서근합니다

 

 

 

 

 

미나리꽝

 

 

물이 복사뼈에 걸리는 어머니의 미나리꽝

볼 때마다 내가 꽝꽝 파래졌다

 

물김치 속의 미나리는

숟갈로 뜬 된장처럼 씹혔다

 

물김치 맛을 아는,

나이

 

나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닮아갔다

아내는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를 닮아갔다

 

아들 놈이

물김치 맛을 아는 나이가 되면

 

미나리꽝 같은 이 밥상이

아랫도리 붉게 제 안에서 자라겠지

 

몸의 힘이 복사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가족사진

 

 

어둑신한,

장판까지 내려온 형광등 스위치 줄이 있는 방

그 방,

파리똥 앉은 가족사진 앞에 서면

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 누가 얼굴을 긁어 놨네요?

사위 노민데, 이혼해짜녀

스위치를 넣어도 파륵파륵 떨기만 하던 형광등

켜져도 어둡던 방에는

새끼손톱처럼 파인 얼굴이

파여서 오롯했다

이불은 병자처럼 밀쳐 있고

테이프가 감싼 리모콘은 방 중간에 있었다

문지방을 넘는 것은 기침 소리뿐,

경운기를 돌리던 손도

장화를 신던 발도

요강도, 구들장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닳은 장판 같은 노인은

사진처럼 자꾸 납작해져 갔다 누우면

사진틀조차 안 뵈는 어둠 속에서 사위의 대가리가

풍구에 타오르는 왕겨처럼

문창호지 손구멍처럼

환했다

 

 

 

 

 

어,머니, 어머니여!

―오십 줄을 바라보는 한 사내가 빚을 낼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 하는 수 없이 어머니께 손 내밀었다. 어머니는 돈이 적은 것을 미안해하며 통장을 내어 놓았다.

 

 

슈퍼뱅크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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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070119교통수당 ₩40,500 ₩662,220 급여

 

  후기

  어머니가 비밀번호로 지목한 것은 아들의 핸드폰 뒷번호라 했으나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도장이란 도장은 몽땅 가지고 아들을 따라 은행에 간 어머니. 여직원은 도장에 테이프를 붙여주며 다음 번에는 그 도장을 가지고 나오시라 친절하게 일렀고 아들은 수표발행비용 250원을 지불했다.

  어머니는 교통비가 들어오는 빈 통장을 챙겨 넣었다.

 

 

 

 

 

이즈막, 꽃

 

 

상추 따는 여인의 엉덩이가

쌈처럼 보인 적 있다

서 있는 모습으로는 깻잎 딸 때였지만

이는 원경이 좋다

안경알에 떨어진 땀을 입바람으로

분다

네모난 꽃은 없고

네모난 꽃은 없고

나비는 날개가 크지만

몸통은 벌을 닮았다

잎 다 따가고 남은 곳에 핀 담배꽃

배추꽃, 감자꽃, 장다리꽃, 부추꽃, 가지꽃, 깨꽃

꽃도 인제 먹는 꽃이 예쁘다

이즈막 그렇다

번지는 사과꽃 복사꽃, 잘 안 뵈는 모과꽃 살구꽃

꽃은 왜,

둥글 넓적인가

여인의 엉덩이야 그저

묻은 독에서 김치를 꺼낼 때나

장 뜨는 때가 첫대바기 좋지만, 그건

다,

어머니로 해서 그렇다

 

 

 

 

 

스텐 세숫대야

 

 

발뒤꿈치 들고 싱크대에 붙어

물 틀어놓고 오줌 누던 시절이 있었네

수배의 단칸방에는

먹이를 물어 나르는 여인이 있어

곰쥐처럼 견딜 수 있었네

―나, 어떻게 오줌 누지?

찾다 찾다 공동 수돗가

스텐 세숫대야를 가져다 주었네

엉덩이가 곱작 담기는 어둠 속에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소리가 있었네

그 소리―

목을 감는 졸린 딸을 안은 듯 세숫대야를 들었고

버릴 곳을 찾다가

내 속에 버렸네

그 여문 옥수숫빛 세숫대야를

그 밤

내가 뒤집어 썼다네

 

 

 

 

 

나비야 나비야

 

 

나비가 집 뒤 切開地

먹자둣빛 흙에 앉았다

날개짓도 멈춘 지 오래여서

나도 오래 보았다.

 

오늘은 단감 무늬 호랑나비 한 마리가

두엄 더미에 오래 앉아

흰둥이의 호기심마저 불러냈다

묵직한 냄새 속에

나비 한 마리

 

나비야 내게 와서 앉아라

나도 적당히 헐었고

썩을 만큼 썩었단다

나도야 설탕꿀은 된단다

나비야 나비야

 

 

 

 

 

어쩌다, 내가 이쁜

 

 

새벽에, 개똥을 두엄더미에 던지며

처먹고 똥만 싼다고 부삽 득득 긁지만,

기분 좋은 투정도 있기는 있는 것이다

투정에 걸리는 밤송이와 도토리집은

부삽질을 부드럽게 한다

저를 열어 제 속의 것 떨어뜨린 것이

바짝 세운 가시를 그대로 두고

무른 안부터 녹아가면서, 금세

거름빛을 닮아가는 중인 것이다

부삽이야말로 밤송이 까는데 제격이지만

발로 밟힌 밤송이는 이슬에 젖어

눅눅한 것이어서, 가시마저

밤 궁둥이마냥 이뻐 보이는 것이어서,

돌팍을 텡텡 쳐보기도 하는 것인데

눅진한 아침도 이때, 흠칫

이슬을 터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봐도

내가 이쁠 때가 있는 것이다

 

 

 

 

 

 

 

 

 

 

|시작노트|

 

단상 몇 개

 

 

  1

  시는 좋은 시와 좋지 않은 시로 구분된다. 물론 그 이전에 詩와 非詩가 있다. 보통 좋은 시로 일컬어지는 시도 나누면 좋은 시와 공부하기 좋은 시(더 정확하게는 공부 가르치기에 좋은 시)가 있지 않은가 한다. 평자의 선호도가 있거나 자기 나름의 이슈를 가지고 있는 시는 공부 재료로 좋다. 공부 가르치는 데 좋은 시는 다른 시와 구별을 목적하므로 변별 자체가 목적이 된다. 그런 시는 계속 팔린다는 특징이 있고 또 시 지망생의 욕구와 맞아 떨어진다는 측면도 있다. 유하의 시에서 그런 면을 본다. 무림 반대편에 영화, 압구정 반대편에 하나대, 세운상가 반대편에 재즈, 경마 그 너머에 자전거를 배치하는 그의 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고, 다른 시와 구별되는 분명한 특징을 가진 시지만 눈치 채기 힘든 기획 시집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렇게 쓸 만큼 그는 재능을 가진 시인이다. 그렇지만 재능 있는 시인과 좋은 시인이 다르다. 마치 좋은 시와 재능이 느껴지는 시가 다르듯(물론 재능이 느껴지는 시는 ‘재능’을 못 느끼게 할 정도가 되어야 재능 있는 시다)이 말이다.

  김기택의 시 「다리 저는 사람」은 좋은 시다. 그 시는 좋은 시지만 공부 가르치기에 좋은 시에 많이 가깝다. 어떻게 묘사만으로 시가 될 수 있는지, 시에 왜 묘사가 중요한지, 묘사가 어떻게 형상화에 일조하는지, 감정의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는데 적합하다. 그의 낭송시를 자주 들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재능이 느껴지고 시 자체가 좀 불편하다. 물론 불편을 의도할 수는 있다. 아무튼 좋은 시라는 느낌이 처음에 비해 많이 희석되는 것은 사실이다.

  좋은 시는 일생에 한 편을 건지기 어렵다고 한다.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은 언제 보아도 좋다. 언제 보아도 좋은 시, 시간을 이기는 시야말로 좋은 시가 아닐까 한다. 공부하기 좋은 시 하나조차 없는 나로서는 나를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그런 연유겠지만 역시 시인은 좋은 시가 목적이어야 한다. 어쩌면 좋은 시는 그런 목적마저 없는 지고지순이어야 나오지 않을까 싶다.

 

  2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과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내게 여전히 좋은 시집으로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거기에는 시인 자신의 끌탕이 들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좀 재미없다 싶은 시들은 자신의 얘기가 아닌 자신의 관심사만 읊조리거나 아니면 들입다 자신만 판다.

  그러니까 시는 결국은 자신의 무엇을 쓰는 것이지만 그 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남의 공감을 얻는 깊이를 가져야 한다.

  그들보다 아프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3

  기형도의 ‘詩作 메모’에 보면 나의 흥미를 끄는 구절이 있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기형도처럼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믿어서 시골로 온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당위’에 몸을 맡기고 살다가 나의 ‘본성’이 원하는 바에 솔직 하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 ‘자연’으로 가자는 생각이 절실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기형도처럼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한 것도 아니건만 가고자 했던 시골에 오고 보니, 모순이 없는 것처럼 보여 오랜 시간 시가 써지지 않았다.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린 결론은 있다. ‘도시의 어떤 흐름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 것, 현재의 - 내 이야기를 쓸 것’ 등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사는 곳의 내 이야기를 쓴다. 다만 소신 여부를 떠나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는 나도 경계해야 한다.

 

  4

  계간 『창작과비평』이 창간 40주년 기념으로 만든 낭송시집 ‘언의의 촛불들이 피어날 때’가 차 오디오 박스에 들어 있다. 제천에서 단양으로 오가는 길에 가끔, 습관적으로 듣게 된다. 오래, 자주 듣다 보니 한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결국 나는 어떠냐는 것이 문제지만 현재의 느낌은 이렇다.

 

  김남주의 「자유」는 막 패 낸 장작과 같은 시다. 형상화고 뭐고 없이 결대로 쪼개 내리는 흐름이 시라는 듯 거침이 없다. 한 개성이다. 질리지가 않는다. 잔잔한 낭송의 흐름에서 그 낭송은 흐름을 바꾸는 힘도 있다.

  시가 긴 것도 지루할 수가(고은 - 「촛불 앞에서」) 있고, 너무 유비 관계가 가까워 전언이 분명한 데다 사회성마저 띠는 시들은 건너 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섬쩍지근하다.

  나희덕과 안도현의 시를 듣고 있으면 다른 좋은 시도 많은데 왜 그런 시를 뽑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김선우의 시는 시가 이어지지 않고 수제비 떼듯 부분 부분이 정확하게 들린다.

  낭송이 너무 읊조리는 것도 걸리지만 자신감에 차 있는 것도 걸린다. 그러니까 낭송시는 내용 이전에 음감도 몹시 중요하다. 들을수록 좋아지고 이해되는 시는 박영근의 시 「내가 떠난 뒤」다.

  이해가 금세 되는 시들은 점점 식상하기 마련인데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는 그렇지가 않다.

  시보다 낭송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역도 있어서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는 낭송이 더 좋다.

  계속 들어도 좋은 시가 있으니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이시영의 「서시」,이성부의 「봄」, 강은교의 「아침」이 그렇다. 개인적인 취향 탓일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조금의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 끝이면 나는 내가 참혹해진다. 그래서 조심하는 세월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나의 전부가 된 것에 후회가 없기로 한다. 보석은 아닐지언정 손때의 세월로 내 시가 몽돌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낭송이 겁이 난다.

 

 

 

 

 

 

 

 

 

 

|연보|

 

  序

  딱, 6줄로 보낸 연보를 퇴짜 맞고 다시 쓴다. 잘돼야 주접이나 신파가 될 것이기에 저어했는데, 해설도 없는 판에 재미 새부랑새부랑 하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문진금 신청 3번에 3번, 다 떨어졌다. 등단 10년 즈음 신청한 대산 지원금은 1번에, 1번 떨어졌다. 거기는 미등단 포함이라고 해서 시평 쓴 평론도 같이 지원했었다. 등단 만 15년에(물론 문단에서는 나의 「윤상원문학상」등단을 인정하지 않지만) 문지 시인선 2번 지원에, 2번 다 떨어졌다. 하하, 그래도 시집 지원은 거기만 했다.

  시와 관련하여 ‘슬픔’이니 ‘아픔’이니 하는 따위의 말은 내게 적절치 않다. 내가 주목하는 낱말은 ‘굴욕’, 혹은 ‘모욕’이며 ‘그것’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것이 나를 키운 절반의 힘이다. 나머지 반의반은 투고였다(물론, 문예지의 어느 곳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머지 반의반은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어떤 행태들이 시집 한 권 없는 시인 행세를 오랜 시간 가능케 했다. 자신의 이력을 속일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다. 시집 내고 후회하는 시인을 많이 보아온 터수라, 有心無心 날 다졌다.

  三顧草廬는 아니지만 二顧草廬는 되는 시집 발간 제안에 응한 것은 시 전편이, 다,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까부는 말이기 십상이요, 후회로 남을 말이지만 현재의 내겐 그렇다.

 

1961 나의 주민등록 앞줄은 <610225>다. 그것은 다 나의 아버지 尹起讚과 어머니 金學順의 不學 때문이었다. 실 나이는 음력 59년 12월 24일로 양력으로는 60년 1월 21일 동 틀 무렵에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충북 보은군 내북면 장속리, 7살까지 거기 살았다. 애매한 나이 덕에 58년 개띠 이상을 깍듯이 대했는데 가장 까칠한 선배는 이재무였(지금도 그렇다)고 가장 살가운 선배는 故 박영근 형과 소설가 임영태 형이었다. 약세를 보이자(내 깐에는 겸손이었는데) 다짜고짜 ‘윤 시인은 왜 나한테 형이라고 안해!’하고 시비 건 것은 김영탁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의 장남이며, 그는 내게 19살 연상의 여인이다. 나의 아버지는 징그럽게(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를 고생시킨 분으로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킨 장본인이시다.

 

1966 충남 공주군 정안면 인풍리로 이사. 소작 4마지기 천수답을 기억한다. ‘타관’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로 인해 앓는 ‘장남’의 아픔을 어렴풋이 알게 해 준 곳이다. 나의 시적 기질과 낭만성은 어머니로부터 받았고,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그걸 생활로 알게 해준 곳이 공주다.

 

1971 인천시 북구 부평동 498번지, 옛 지명 ‘하촌’으로 이사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곳. 일명 판자집, 하꼬방으로 불리던 그곳의 삶은 가난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황석영의 소설「돼지꿈」의 배경과 같은 곳이다. 소설의 배경이 그렇게 잘 이해된 것은 처음이었다. 운동화 신는 것이 소원일 수 있고, 600원이었던 졸업 앨범을 못 사고, 중학교 갈 사람 나오라고 해도 못 나갔던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물론 공부를 아주 잘했다면 몰랐겠지만 그렇지도 않았고, 가난에 대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것은 나의 어느 곳 한편에 무감각도 있었고 어떤 낭만적 기질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1972 중학교에 못 가고 영등포로 취직하러 아버지와 가다가 차멀미로 고척동에서부터 부평까지 철길로 걸어왔다.

놀다가 뒤늦게 부평 고등 공민 학교, 일명 구세군 중학교에 들어갔다. 가난한 이들 중에 더 가난하다는 것은 참 불편했다. 교복도 못 입고 다닌다든지, 월 1,200원의 수업료를 못내 불려다닌다든지, 이성이 뭔지 알 무렵 주눅들게 된다든지 하는 뭐 그런 거다. 당시 생활에 적응하려던 아버지의 직업이 물경 20가지는 될 무렵이었고 어머니는 소대가리 같은 아들 놈 넷을 반은 웬수(어머니의 발음)로 여기셨다.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면 ‘가닝아! 가닝아!’하는 소리가 야속하게만 들렸더랬다.

검정고시 합격해 봐야 마음만 아플 거라는 아버지의 말은 지금도 서운하지만 졸업식도 하기 전에 영등포 시립병원 앞 공구 상가에 있는 <대흥상회>에 취직했다. 월급은 먹고 자고 한 달에 한 번 쉬고 5,000원. 그 때 벌어서 사다 놓은 텔레비가 ‘화신소니’였다. 어린 나이에 3년 정도 일했다.

이듬해에 고등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1976 김신용이 성장통의 하나로 ‘지게’를 얘기하지만 내게는 ‘리어카’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일명 <짐바리꾼>이었다. (그런 것을 시로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내가 무디거나 낭만적이거나 아직 때가 아니거나 그런 것 같다) 무슨 말이냐? 부평 깡시장, 새벽 야채 시장에서 짐을 옮겨주고 삯을 받는 일을 했다. 나의 운명을 바꾼 일이었다. 소사의 법랑 공장 국제전광사의 한 달 월급이 20,000원이었는데 짐바리는 하루 새벽 참에 3시간을 일하고 1,500원 정도 벌 수 있었다. 가까운 시장 내부로 옮기면 150원, 멀리 시장의 가게로 옮기면 300원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를 키운 절반은 ‘리어카’였던 셈이다.

새벽에 일을 하고 졸면서 대학 입학 자격 검정고시 공부를 하러 종로로 다녔다. 종로의 제일학원, YMCA, 경복학원 등을 단과로 수강했다. 교복 틈새의 공부는 아팠다. 지금도 지겨운 ‘공통 수학’, ‘수1’은 기초가 없는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2달 완성 단과반 공부는 중복이 있을지언정 진도가 나갈 수 없는 절대 영역이 있었다. 검정고시 과락 40점을 넘기가 참 힘들었다.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예비고사 공부를 보면서 국어에도 古文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했다. 내겐 고문이었다. 누구는 문청 시절에 교과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예비고사 서울 커트라인이 있던 시절 수학 25개 중 5개를 풀기도 바빴다. 예비고사는 서울 커트라인을 훨씬 상회했는데 아버지는 교대 진학을 권유했다. 전혀 없는 진학 정보로 인천 교대에 떨어지고 심실풀이로 후기 시험을 본 숭전대에서는 다시금 경악했다. 당시 안병욱 교수의 에세이를 읽고 시험을 본 것이었는데, 영어 과목의 영작에 수학 과목의 주관식으로 인해 넘쳤던 자신감 꺾였다. 재수하면서 본래 뜻을 두었던 神學을 하기로 했다. 목표는 감리교 신학대학이었으나 못 가고 후기로 부천의 서울신학대학의 신학과에 들어갔다.

내 생애는 사춘기라는 것이 없다. 기억하는 것은 여학생의 교복과 버스 차장의 유니폼뿐이다.

 

1981 나는 전두환 장군의 덕을 본 사람이다. 본고사가 없어진 덕에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포한이 맺혔던 공부였으나 가난은 참 많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다. 300원짜리 라면을 못 먹던 가난 속에서, 군 복무 혜택을 보고자 기신기신 1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 주로 병영문고를 읽었는데, 다행히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자연스레 좌파 의식을 갖게 되었고 제대 후 복학과 더불어 노동자 의식화 일환으로 야학에 동참했다. 이후 현장 활동은 좀 길었다, 10년.

 

1988 날 먹여 살리겠다는 여인 朴賢玉과 결혼, 가훈을 <사랑받는 남편, 성공하는 아내>로 정했다. 이듬해 아들 民主를 낳았다.

당시에 보았던 문예지는 『노동문학』, 이후 문학 동아리 모임을 한 곳은 <인천노동자 문학회> 『글터』, 현재 문단 활동하고 있는 김해자, 박남인을 여기서 만났다.

 

1994년 주간 노동자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윤상원문학상」을 받았다. 문단에서는 전혀 안 알아준다는 것도 몰랐다(당시는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안 웃기는 얘기인데, 표 때문에 권유받고 문인협회 가입 신청서를 냈다가 퇴자 맞았고, 이후에 한국시인협회 가입신청을 권유 받고 서류를 냈다가 <윤상원문학상>을 내세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94년 투고한 『황해문화』 겨울호에 「추일서정」외 2편의 시를 발표했고 권두언에서 최원식 교수의 호평을 받았다. 96년에 『문학과 사회』가을호에 「나는 직립이다」外 3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문학과사회』에 작품을 발표 이후 신인 투고를 할 수가 없었고, 원고 청탁은 안 오고 겁나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면서 시 공부만 했다.

 

1999 이념적 당위가 요구하는 대로 살다가 본능이 요구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7년의 여행 끝에 충북 단양군 단성면 대잠리 228-3에 땅과 집을 장만하여 이사했다. 단양 팔경의 하나인 하선암으로 절경이다. 아내는 아직도 서울의 명동(평화방송)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나는 본능대로 단양에서 살면서 제천을 오가고 있다.

 

2002 계간 『리토피아』겨울호에 <젊은시인조명> 코너에 참여하면서 문단 활동을 실질적으로 재개했다.

 

2004년 시인축구단 <글발>의 선수가 되었다. 축구 매니아로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계간 『창조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창조문학』에 <계간시평>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2006 계간 시지 『시안』에 2회(가을호~겨울호)에 걸쳐 <시인의 고향과 시>에 참여했다.

 

2007년 계간 『창조문학』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계간 『미네르바』부주간.

 

 

  終

  축구를 하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친다. 바로 체력과 스피드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자신의 시에 대해 근원적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에서는 시인이 어떻게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하느냐와 형상력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 된다. 좋은 시는 존재하며 그 생명력으로 인해 길게 존립한다. 시에 대하여 솔직한 말을 해 줄 사람이 없거나 자신의 시에 대해 들으려 하지 않을 때가 시인에게는 문제가 된다. 시인으로서 나의 유일한 장점은 내 시에 대해서 어떤 말에도 열려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생의 시시콜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詩詩콜콜일 때는 아니다. 중요해진다. 시인인 나에게 시 외의 어떤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모범적인 것은 견디기 싫은 것이지만 시 외적인 것으로 인해 시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가 전부일 때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