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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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詩가 선정한 좋은시 | 복효근

也獸 2008. 8. 21. 16:10

뭉게구름과소프트 아이스크림 | 조 명

 

차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총각 선생이 우리들에게 건네준 소프트. 사악

사악. 녹아버리기 전에 받아먹어야 할 횃불 모양 소프트. 여중생의 발그

스름한 식도를 타고 미끌어질 소프트.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내 손가락 사

이를 줄줄 흘러내리던, 핥아먹어야 할지 깨물어 먹어야 할지 모를, 야속

한 소프트, 무심한 소프트, 구석에 앉아 분홍구름 한 조각 삼켜보았는지

기억도 할 수 없는, 생애 첫 소프트. 스카이시티 베이커리 유리벽 너머,

뭉게구름이 모양을 바꾸고 있다. 그 총각 선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아,

아직도 그 소녀는 뭉개진 과자컵을 들고 제과점 골목을 서성거리고

 

-시집『여왕코끼리의힘(민음사)』에서

 

 詩 읽기

 

생애 첫사랑은 그렇게 왔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차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하필이면총각 선생이었다. 그리고‘나’는 시골에서 갓 올라

온 여중생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는 건지도 모르는 촌년이었다.

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총각선생도, 아이스크림도 야속했다. 무심

했다. 결국 먹지 못했다. 먹었더라면 그 소리는 또한 어떠했었을까?“ 사악

사악”했을것이다. 그 촉감은 어떠했을까? 목구멍에 미끌어졌을 것이다.

그대신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손가락 사이를 줄줄 흘러내리고 말았다.

왜 첫사랑은 그렇게 사악하게 다가왔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첫사랑

은 횃불모양으로 소녀의 가슴에 불을 질렀을까? 그 불에 몽글게, 소프트

의 그 감촉처럼 재가 되어 쓸려가 버린 그 추억을 시인은 “기억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청각으로 시각으로 미각으로 촉각으로 선연하게 감각으

로 기억을 복원해놓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첫사랑은 그렇게 짝사랑으로 끝맺고 뭉게구름

과 같이 변덕스러운 세월을 타고 나는 어느 새 어른이 되었다. 그 때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스카이시티 베이커리 유리벽 너머에서 아이스크림

을 먹고 있는 걸 보자니 그 총각 선생이 떠오른다. 머릿속에 한 편의 활동

사진이 풀리면서 저 아이들이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촌년인 내가 먹지

못하고 줄줄 녹아 흐르던 나의 뭉개진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오버랩 된다.

분명한 것은 그 때 ‘나’ 는 그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 추

억과 함께 이 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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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장미를 임신하다 | 조문경


노란 장미 앞에 머물렀다
붉은 색보다 더 강렬하다
사고 싶다
쥐고 싶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이었는데
위통 때문에 죽음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밤새 입술을 깨물며
아침을 맞은 것뿐인데
지금 가슴이 쿵쾅거린다
알 수 없는 열애처럼
다가서게 한다
적막한 생의 방이 생긴 걸까
그 방 주인의 취향일까
붉은 입술이 아니라
노란 입술 앞에서
절제할 수 없는 유쾌함이 뛴다
갖고 싶다, 붉은 색을 노란 색으로 바꿔
아니 노란 색 얼굴이 되어
살고 싶다


-시집『노란 장미를 임신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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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다”,“ 쥐고 싶다”,“ 갖고 싶다”는 소유 욕망이 여기서만큼은 천
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애써 그러한 욕망을 덮어두고 고상한 척
하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가식적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그렇다.“ 죽음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고통을 통과해본 사람이
라면 평소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집착과 애정을‘열
애’처럼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것이 노란 색이 아니었어도 그럴
것이다. 절망을 찢어 헤치고 맞이한 이 아침에 사랑스럽지 아니한 것이
있으랴!
붉은 색 장미처럼 대상을 앞에 두고, 마주 하여, 다시 말하면 2인칭으
로 대하여 살아오던 대상화된 사랑이 아니다. 죽음마저 사랑할 만큼의 고
통을 지나온 사람에게 이 아침 맞이한 노란 장미와는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다. 몰입의 단계를 넘어서 동화 되고 일체가 되고 싶은 것이다.
세계와 화해하고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밤새 입술을 깨물며”생을, 사랑을
앓아본 자에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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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간 | 허 림


여태껏 컴퓨터가 없어
시간이 집을 지은 누런 달력 뒷장에다가 낙서를 하거나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나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번호나 주소를 적으며
막걸리에 찬밥을 말아 척척 시어 꼬부라진 열무김치에
막장에 풋고추를 찍어 밤참을 먹다가, 문득
먼 증조부 뻘 제상에 괴어놓은
약과며 다식이며 과줄을 얻어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은 것 이다


- 시집『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황금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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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컴퓨터가 없다니! 이 디지털 유목의 시대에.
아직도“시간이 집을 짓는”철 지난 누런 달력을 지니고 있다니, 거기 뒷
장에 낙서를, 생각을 적다니, 가상공간의 주소인 이메일이 아니고 사람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다니......
발달된 통신 시설과 장비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간접화 시키고 인간
관계를 개별화 시켜버렸다. 만나지 않고도 거래 —‘거래’라는 말, 현대의
인간관계를 지적하는 말로 얼마나 적확한가? — 는 이루어지고 더구나
얼굴을 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산뜻하고 쿨하게 비즈니스 할 수 있는데,
그러자면 pc는 필수가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다. 먼 먼, 잊어도 좋고 챙기지 않아도 좋
은 조상의 제사를 챙기고 또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주려고 약과랑 다식
이랑 과자랑 싸들고 돌아오시던 그 아버지가 그립다.
시인도 알고 있다. 컴퓨터가 사람과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라는 것을.
그래서 컴퓨터를 들여놓지 않은 것이다.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에서 세
상살이의 따뜻함을 느껴보고 꿈꾸고자 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래서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아버지가 그랬을 성 싶은 식사법으로 밥을 먹고 있다. 아니 술을 먹
고 있다. 소박하게 그러나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식사법이다. 산뜻하고
깔끔하고 모던한 식사법이 아니다. 혼자 먹더라도 그 앞엔 또 한 벌의 숟
가락과 젓가락이 놓여있고 고봉밥 한 그릇도 놓여 있을 것 같다. 참 따뜻
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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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봄날에 | 윤관영


뭔 힘이 밀어 꽃잎은 나오느냐
나오면서
나오면서
피어나느냐
뭔 힘이 밀어 태깔마저 밀어내느냐
볕 좋은 봄 한날
내 오줌 누던 모습, 정면으로 지켜보던 흰둥이랑
쪼그려 앉아서
흰 배꽃을, 분홍 복숭꽃을
한나절 보고 있었어라
삼 년 전 꽃나무 심은 내가 갸륵해서
거름마저 파묻은 참이어서
앞발 드는 흰둥이 목덜미를
쓸어주는데,
내 몸에선 뭔 힘이 밀어
이리 눈물 나는 것이냐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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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힘”에서 ‘뭔’은 ‘무슨’이란 뜻이다. 그러니까‘무슨 힘’인데 이 말
로써 궁극적으로 그려 내고자 한 것은 어쩌면 신(또는 신의 섭리)이 아니
었을까? 우주만물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봄이 되어 마른 나뭇가지에서 싹이 움튼다. 꽃눈이 옴작거리더니 꽃이
피어나고 그 검은 땅에서 고운 태깔마저 갖춰 입고 피어난다. 어찌 경이
롭지 아니한가? 잠시 한나절 관조하고 신의 섭리를 묵상해도 좋으리라.
여기서는 꽃과 흰둥이와 내가 변별되지 않아도 좋다. 모두 신의 역사인
생명으로 하나이지 않은가?
더구나 너와 나와 꽃과 흰둥이 모두는 그 생명현상을 거드는 도반들이
어서 내가 준 거름을 먹고 자란 꽃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그것을 지켜보
아준 흰둥이가 앞발을 들어 개와 내가 소통한다. 이 봄에 한없이 대견스
러워 그 목덜미를 쓸어준다. 알고 보면 신의 역사에 동참하는 한 식구들
인 것이다. 어찌 연민하지 않으랴.
나도 대견스럽고 꽃도 대견스럽고 흰둥이도 대견스럽다. 그 모든 것에
서 신의 힘을 느낀다. 엄연하고 조화롭다. 이 생명현상들 모두가 대견스
러워 눈물이 난다. 깨달음의 눈물이고 연민과 사랑의 눈물이다. 이 우주
를 돌리는 힘이다. 속된 감상의 눈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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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 김산옥


살구나무집 금영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고는 툇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뒷산까지 날아온 뻐꾸기
엄마의 잔기침을 끊어놓았다
엄마의 기침소리가 멈출 때마다
금영이는 연필을 놓고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고는 했다


-시집『앵무새 재우기』(현대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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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금영이가 여물대로 여물었구나. 아픈 엄마 지키느라 그 봄 한 날
을 툇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구나. 해소천식이었을까 아니면 그 몹
쓸 폐병이라도 걸렸던 것일까? 엄마는 오랫동안 기침을 앓아오고 있다.
너무 쇠약해져서 가늘어진 그 잔기침 소리는 금영이가 붙잡고 있는 마지
막 인연의 끈인지도 모른다.
엄마와 금영이 둘밖에 없다. 가끔 뻐꾸기가 문병을 다녀간다. 봄이 왔
구나. 엄마는 뻐꾸기 소리로 세월을 감지한다. 이 봄은 무사히 넘길 것인
지. 나가보지 못한 보리밭은 푸르게 출렁이겠구나. 이 봄이 가면 금영이
는 얼마나 클까?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우는 소리에 문설주에 귀대고 엿
듣는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처럼 엄마는 저 뻐꾸기 소리로 세상 밖과
소통하고 있다.
뻐꾸기는 탁란조라지. 개개비 둥지에 알을 까놓고 저는 나 몰라라 살아
가는 매정한 새라지. 아, 내가 떠나면 저 아이를 누가 거둘까? 제 새끼를
다른 어미에게 의탁해야 하는 매정한 엄마 뻐꾸기가 되겠구나. 저 뻐꾸기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 터져 나오는 기침도 잠시 억눌러 가둬둘
수밖에.
금영이는 그 기침소리가 오히려 엄마가 살아있다는 신호이기에 기침소
리가 끊긴 적막이 무섭다. 그 때마다 문을 열고 엄마가 뻐꾸기가 되어 날
아가 버리지는 않았는지‘확인’한다. 안타까운 눈빛을 건네던 엄마의 흰
얼굴과 그걸 들여다보고 안도하는 금영, 두 모녀의 모습이 정밀하게 잘
그려져 있다.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형식 속에 오고가는 모녀의 안타까운
눈빛과 슬픔이 참 담담한 표정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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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오월, 아이 같은 | 조덕자


집 앞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
언제 발 뻗었는지 감나무 씨앗 하나
세상을 향해 푸르게 키 키우고 있다
화살 같은 햇살 속
작은 몸 흔드는 봄바람 맞으며
네가 살아있는 세상은 따뜻하냐고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아직, 세상은 살아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투성이라고
세상 밖으로 귀 열고 가슴 펴 보면
몸 흔드는 봄바람쯤 안중에도 없는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향긋한 봄바람 속 느긋하게 앉아서
초록빛 눈으로 너처럼 순수하고 여린 싹 틔워
푸르고 빛나는 시詩쓰고 싶다고
가만히 너에게 손 내밀어본다


-시집『지중해 블루 같은』(문학의 전당 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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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렇다 시인의 말대로“살아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설사 봄바람
이 따뜻하게 몸을 흔든다 해도 세상 밖으로 귀를 열고 가슴을 펴보면 찬
바람 쌩쌩 불고 겨울 벌판처럼 냉혹한 게 세상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감나무 씨앗이 싹을 틔운다. 그 어리고 푸른 싹은 웃으며 말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참 따뜻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만히 들
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불안하다. 그가 건너갈 멀고 험한 세상을 시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못하는 가슴
은 먹먹하다.
시인은 다시 묻는다. 시를 쓰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 냉혹한 세상을 어
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고 묻는 게 시 쓰는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리고 그 답을 어린 감나무 씨앗이 틔우는 푸른 싹에서 찾는다. “초록빛
눈으로 너처럼 순수하고 여린 싹 틔워/푸르고 빛나는 시”를 추구하는 것
말이다.

출처 : 우리시회(URISI)
글쓴이 : 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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