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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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시인의 시 읽기/자목련

也獸 2008. 10. 13. 10:31

     자목련
        -윤관영

 

    그렇게 가더이다

 

    단단한 머리 위
    더 단단한 송아지 뿔처럼
    내게서 피어나
    상아처럼 굳을 것만 같더니, 피어
    새끼 제비 아가리 같은 자태이더니
    그 부리 속 혓바닥 같은 수줍음이라도 있더니
    치마 입고 선 물구나무처럼 화끈히
    몸 열어 젖히더니 간밤에
    비바람 맞아, 탯자리
    그마저 쓸어내더니
    자, 목련 그렇게 가는구나
    갔구나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에서

 


  꽃은 피었다가 진다. 필 때가 되어 최대의 삶으로 피고 지는 것까지 한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고 미도 추도 없다. 그런데 보는 사람들은 다르다. 어떤 상태는 아름답고 어떤 상태는 추하다. 어떤 상태는 아름답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고 어떤 상태는 추하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한다. 어쩌면 다 제 마음지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짓는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제 마음을 사실처럼 살다가 어느 날 그 부질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도 이 시에서처럼 대상으로서의 '자목련'을 "자, 목련"(自, 木蓮)으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이 정도의 언어 재미라면 기막히지 않는가!). 왜냐하면 자목련이 '저기'에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목련은 내게서 피어난 것이다. "단단한 머리 위/ 더 단단한 송아지 뿔처럼/ 내게서 피어나/ 상아처럼 굳을 것만 같더니"로 피어난 것이다. 내 믿음으로 가득한 자목련은 이미 내게서 피어난 것이다. "새끼 제비 아가리 같은 자태이더니/ 그 부리 속 혓바닥 같은 수줍음이라도 있더니/ 치마 입고 선 물구나무처럼 화끈히/ 몸 열어 젖히더니"의 자목련의 모습은 하나같이 내 감정의 이미지였고, 내가 없다면 없어지고 말 감정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만큼 나는 나의 이미지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철석같이 믿었으니 저기에 있는 대상을 사랑한 것인지 날 사랑한 것인지 나뉘지도 않았다. 그러나 "간밤에/ 비바람 맞아, 탯자리/ 그마저 쓸어내더니" 떠나간다. 떠나감은 냉정하여 어떤 흔적도 내게 남기지 않고, 그 탯자리까지 쓸어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 순간, 지독한 꿈이 깨진 것이다. 다만 내게서 피어났던 "자, 목련" 그렇게 "가는구나/ 갔구나". 견고하여 영원할 것 같았던 모든 것들도 그렇게 갈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마음을 다져 세우지 않아도 지독히 그리고 오래 오래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선사라면 '건방떨지 말고 기다려봐. 내년에 또 필 테니까!'라고 말했을까.

-글/오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