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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교보문고 행 行/김명원 본문
교보문고 행 行
김명원
탐조여행 探鳥旅行에 필요하다는
조류도감을 사기 위해 교보문고로 가며
호주머니 깊숙이 삼만 원을 넣었다
내가 서 있는 지하철 첫 칸에서 왼쪽으로
창 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쏠리며 발 빠르게 지나는 사이
금정역에서 한 여인이 탔다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더듬더듬
노래를 한다, 주님 내 발 붙드사 그 곁에 서게 하소서---
들고 있는 초록색 바구니 하얀 은닢을 만지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만이 느리게 살아 움직이는 삼 분간
나는 삼십 번을 망설이다 오천 원을 넣었다
이제 조류도감은 살 수 없지만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은 살 수 있어
나는 작게 안도했다
사당 역에서 검은 안경의 부부가 탔다
남편은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고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잡고 한 쪽에는
초록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었다 그들도
노래를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우리 주 은혜 놀라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천 원을 넣었다
아직도 얼마든지 책은 살 수 있어,
나는 다시 오천 원어치 마음이 가벼워졌다
서울역에 거의 다 와 아홉 살쯤 여자아이가
올라탔다, 첫돌도 지나지 않았을 아기를
업은 채 껌을 돌리며 아기가 운다고 아홉 살 아이는
버럭버럭 욕을 해댔다, 흘러내린 포대기를
올려 주는 아주머니에게도 바득바득
화를 냈다, 나는 다시 만 원을 꺼냈다
고맙다는 말조차 없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만 원어치 가벼워지기 위해서였다
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누구도
만나지 말기를 바랐다, 아직도 호주머니에는
만 원어치의 무거움이 남아 있으니까
조류도감은 살 수 없지만
내가 사고 싶은 시집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종각역에서 무사히 내렸을 때
형광등이 반만 켜져 깜박이는 지하보도 끝 편
고단함과 추위에 나부끼는 할아버지와 만났다
포장용 색 테이프를 붙여 입은 해진 바지에
주름살 투성이의 파카 위로 머리칼조차
남겨져 있지 않은 대머리가 눈 시리게 빛났다
나는 벗겨진 신발 옆에 남아 있던 만 원을 놓았다
한 달을 벼르던 교보문고 행은 거기서 끝났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먼 여행을 마치고
이동하는 철새 떼에 섞여 있었다
아주 아주 가벼워져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김명원의 시 중에서 '밧줄'이나 '찐빵', 그리고 '내가 못 쓰는 시'같은 걸 좋아한다. 찐빵에는 '왈탕 발탕'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는 '왈탕 발탕'이 재미있고 '밧줄'은 '그 무한함에 와락/질리고 싶다'는 전언이 역설적 사실로 와서 좋다. '못 쓰는 시'나 '밧줄'도 아마 병체험이 가져다준 극단이 있었기에 그의 시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위의 시에서 보듯 천성이 착한 사람이 관능적인 부분을 치고 나가는데는 한계가 있기 쉬운데 그 것을 넘어섰기에 하는 말이다.
그의 좋은 시가 많지만 나는 시 '교보문고 행'처럼 그를 드러내는 시는 없다고 보여진다. (물론 모든 시가 시인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기에 그 서정에 믿음이 가는 정말이지 바보같은 - 조류도감 하나 사는 일이 이렇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한 달을 벼른 일이었음에도 불발로 끝난다.
자칫 잘못 보면 수필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시, 그러나 그는 '이동하는 철새 떼에 섞여/아주 아주 가벼워져 날아가고 있'지 않는가. (처음에는 삼십 번을 망설였다)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누구도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는 구절이 날 감동시킨다. 난 '적선'이나 '동정'에서 멀리 있는 존재다. 그가 아파 보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서합일이 잘 되는 천상 시인이 아닌가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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