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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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물결종이/김충규

也獸 2010. 2. 13. 00:45

 

물결종이

           김충규

 

 

물고기가 수면에 잠들어 있다

강이 물결종이로 어탁魚拓을 하고 있는 중

아득한 허공 너머에 사는 어떤 신神이 내려와

내 몸에 먹을 칠하고 탁본 뜨는 상상,

그러나 신神을 만난 적이 없으니 공허할 뿐,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탁본을 떠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므로 몽롱할 뿐,

강물로  씻어내는 내 몸의 비린내가 사방으로 번질 때

그 비린내 맡고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에게 탁본을 맡겨도 될 것

그럴 것 없이 차라리 강에게 맡기는 건 어떨까

강이 햇빛먹을 칠한 내 몸에 부드러운 물결종이를 대고

탁본 뜨는 상상,

물결종이에 탁본이 된 내 몸이 강 위에 둥둥 떠다닐 때

그때는 내가 일생동안 강을 탁본 뜨기 위하여

내 속의 어둠 덩어리를 꺼내 먹으로 갈지 않을지

 

*시집 [아무 망설임 없이] 상재한 것을 축하합니다.

 

*김충규의 시는 강과 그 강이 말라 올린 구름과 그 구름이 비 되어 내린 것이 순환이 계속적으로 된다. 물론 그 과정에는 강 속의 물고기도 있고 하늘 위에 달도 있고 달 아래 숲도 있다. 여기서 숲은 유일하게 그의 시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지대이다.

 그의 시는 우울하며 습기가 많고 우중충하다. 긍정적이고 밝지가 않다. 물론 긍정적이고 밝은 것이 좋다는 의미는 또한 아니다. 좀 지나치게 염세적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그러니까,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부분마저도 긍정을 위한 어떤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절망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남근을 잘라 던져버린다, 고 할까.

 그의 시 중에서 숲에 귀를 두고 나오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 와닿았었는데, 위의 이 시는 시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상상력이 밝고 기발해서 내게 와닿은 작품이다. 엄밀하게 시로만 따지자면 다른 두 작품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관점의 새로움과 그의 시적 특징이, 그의 바람이 경쾌하게 드러난 이 작품을 아주 좋게 보았다. 그의 시는 강 자체에 몰입할 때 이상하게 좋은 시가 되는 것 같다. 스스로 상상 이라고 하면서 아주 부드럽게 이어서 깊게 나간다. 나중에서 자신이 강의 탁본을 뜬단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시가 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