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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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봄/오탁번

也獸 2010. 9. 15. 08:24

 

 

    오탁번

 

 

 

똑똑똑 똑똑똑 똑도그르르

딱따구리 소리가

봄 아침을 깨운다

-봄이 왔어요!

느티나무 늦잠을 깨우느라고

딱따구리는 부리가 아프다

 

저승의 잠에서 깬

무너미골 큰할머니가

할미꽃 한 송이

안테나 삼아

새싹 돋는 바깥 세상

엿듣고 있다

 

*Y 시인이 오탁번 선생의 시를 가지고 '당신이야말로 동시가 어울리지?'하는 (그 비슷한) 말씀을 했다는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오탁번 선생의 시집 우리동네는 읽히는 즐거움과 더불어 깊이를 선사한다. 큰 알사탕을 입에 물고 단물을 빨다가 한쪽 귀퉁이를 깨물어 먹다가 갉아먹다가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위트와 유머가 기본으로  깔리지만 나는 시 <봄>과 같은 단아한 서정의 시가 좋다. 선생의 시가 '성적인' 소재가 모티브가 될 때, 읽는 재미가 있지만 그 진정한 멋과 힘은 이처럼 각도를 달리한 서정성에서 나오지 않는가 한다.

 서사적 줄거리가 있는 소재가 시로 육화될 때(동네 이야기든, 문단 이야기든, 성적인 소재든), 선생의 시가 매력을 발하지만 은근한 힘은 바로 이 시 <봄>과 같은 데서 오지 않는가 한다.

*오탁번 선생의 시집 <우리 동네> 출간은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한국 문단에도 좋은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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