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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창(昌)에 날 일(日) 하나가/문정영

也獸 2010. 9. 1. 23:37

 

창(昌)에 날 일(日) 하나가

                                 문정영

 

 

어느 날 이름 바뀌어 다른 생을 사는 일도 있다

이를테면 창(昌)이라는 창성할 가지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인데

자칫 날 일(日) 두 개가 무거운 날 하나 어깨에 메고 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창성해야할 날들은 깨끗하고 순해진 晶의 이름을 달고

다시 살게 되는데, 무거운 日을 두 날이 짊어지고 가는 형상이라

조금은 그 버거움이 가시는 듯도 하다

그러나 번성하여 그 가지가 하나의 숲을 이룰 것인데, 파드득

새 한 마리 날아든 날들로 무안할 일이다

더욱 빛남의 날 두 개에서 눈부시게 밝은 날 세 개로 나아갔으니

내 이름을 잘못 옮긴 신의 뜻이 영채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운명도 점점 순해지리라

 

*내 이름이 창영(昌榮)에서 행정 착오로 정영(晶榮)으로 바뀌었다.

 

 

*시인은 관찰하고 사색하는 자이지만, 남만 보는 존재는 아니다. 아니, 남은 본다는 것도 결국은 자기를 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인은 어는 순간, (윤동주가 구리 거울을 닦듯) 자기 자신에 대해 엄밀한 보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여기서 그 단서는 바뀐 이름에 대한 들여다보기, 바뀐 자신의 이름이 자신의 운명에 미친 영향에 대한 뒤돌아보기다.

  날일 자가 두 개냐, 세 개냐는 유사한 것으로 인한 행정착오지만 의미가 미치는 파장은 아니다. 시인은 그런 사실이 ‘시의 뜻이 영채나기를 바랄 뿐’이며 ‘내 운명도 점점 순해’질 것을 예감한다. 이름에 흔히 들어가는 큼(大/太)이나 흥함(興/昌)보다는, 막연한 큰 기대보다는 깨끗하고 순해진 이름이 좋은 것은 당연지사, 그런 나이도 되었다.

  우연히 변학 된 이름을 계기로 잔잔한 자기 되돌아봄의 세계, 입맥처럼 퍼진다. 순하다.

*시집 <잉크>도 순하게 퍼져나가기를 바라며 상재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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