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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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거울/양은숙

也獸 2010. 12. 28. 15:29

 

 

거울

     양은숙

 

 

외출복으로 갈아입던 그녀가

얼굴을 들이민다 손에 들었던 칼을 천천히

누썹으로 가져간다

 

아주 조금,

끝 눈썹을 민다 좀 깔끔해 보이는지

이리저리 얼굴을 살펴본다

 

옅은 색조화장을 하고 입술을 바른다

바짝 들이민 여자의 코가 금세 닿을 것 같다

콧김으로 뿌옇게 흐려지는 여자의 얼굴

 

거칠어진 건 아닌지

상냥함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따스함은, 포근함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묻지만

여자는

립스틱 칠한 입술만 오물거리고는 습관처럼

재빨리 얼굴을 훑고 등을 돌린다

 

오랜 세월 여자를 보고, 오랜 세월 여자에게 물었으나

여자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얼굴만 본다

 

매일 아침 닿을 듯이 얼굴을 들이미는

저 여자

 

*나와 여자는 다르면서 같은 나이다. 내가 본 나이다. 객관거리가 성공한 케이스라 보여진다.

세부 묘사에 의한 힘이 느껴지고, 단순한데 울림이 길다. 그래, 저 여자! 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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