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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초보 축구, 눈텡이 밤텡이 되다 본문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심정은 안다 했던가?
다치고 나서야, 공 차려면 다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실, 남들이 다쳐서 (주로 다리) 공을 못 찬다며 그라운드를 보고 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더랬다. 내가 소속된 글발 축구단의 친구 채풍묵 감독이 몸 싸음을 싫어하고 너무 점잖게 축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몸을 많이 사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가 너무 좋아하는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에 몸조심을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체감하여 절감하지는 못했다. 내가 이번에 다친 것을 계기로 잘 다치는 축구에 대해, 좋아하는 공차기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0월 3일은 즐거운 날이었다. 개천절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노는 수요일에다 빨간 날이어서 소속된 망원 FC가 유수지 운동장에서 공을 차기 때문이었다. 난 전날(화요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그러니까 개천절인 수요일) 아침 7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는 잠도 안 자고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공차러 갔다. 7시 30분 경에 도착했는데, 회원들이 미니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에 들어가서 20여 분 미니게임을 하고 다른 클럽과 축구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50대 나오라 해서, 25분짜리 쿼터 게임을 3차례 뛰었다. 마로나루에 가서 점심 먹고 간단히 맥주 한잔하고, 당구치는데 따라 가서는 한 게임하고 거기 좁은 의자에서 누워 잤다. 내기 게임을 마친 회원들이 닭갈비 먹으러 간다고 해서 거기서 소주 한잔하고 집에 와서는 아침까지 잤다. 내가 생각해도 좀 축구를 과하게 좋아하는 놈 같기도 하고, 또 하는 일이 그래서 시간이 안 맞아서 계기만 되면 친구들 볼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날, 10월 7일 일요일도 마찬가지로 전날 밤일을 하고 아침 7시에 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자전거 타고 망원 FC회원들이 공차고 있는 망원동 유수지로 향했다. 피곤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도 없고, 공도 찰 수 없으니, 오후 4시에 또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은 '운동 잘하면 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밞았다. 7시 30분 경 도착하니 회원들이 미니게임을 하고 있었고 미리 옷을 입고 또 가드도 하고 하고 있었던 나는 간단한 준비 운동 후 게임에 들어갔다. 한 10여 분 뛰었을까, 뒤에서 공을 빼앗으려 쫒아들다가 상대가 휘두른 오른팔 뒷꿈치에 나의 왼쪽 눈썹 바로 밑을 강타당했다. 순간, 나는 찍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그 타격감이 왔는지 상대도 나의 상태르 보며 어떤지 물었다. 끼고 있던 장갑을 댓다가 떼니 피가 살짝 비쳤다. 그 순간 다행이라 생각했던 건, 내가 빵모자를 쓰고 있었던 거다. 저번 수요일 경기할 때 전임 회장이 귀고리를 하고 공을 차면 귀가 찢어질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빵모자를 눌러쓰고 공을 차고 있었던 거다. 너무 아파서 나는 벤치로 나왔다. 현임 오원열 감독이 많이 불어날 것이라 했고, 멍이 들거라 했고, 선글라스를 끼고 일해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가격당한 왼쪽의 눈이 보이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셀카를 찍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난 크게 심각하지 않았다. 더 공을 못 차는 게 서운했을 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와서 출근도 할 것이라 누웠다. 누운지 1시간도 안 되어 통증이 오고 눈이 계란 수준을 넘어 주먹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일요일이라 병의원은 문 닫았고 약국도 없고, 난감했다. 왼쪽을 가격당해서 오른 쪽 눈도 잘 안 보였다. 유니폼 반바지와 초록 조끼 위에 모자 달린 잠바(후드티)를 입고 핸드폰을 들고 집을 나왔다. 집 근처 약구은 닫았고, 난감했다. 근처 병원은 없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일단 전화로 오늘 일 못 나갈 것을 알렸다. 그런데, 사장님은 휴가 중이었고, 사모님은 허리가 아픈 중이었고, 쉬는 이모들은 일이 잡혀 있어서 내일 일을 부득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이 펑크가 날 것을 염려한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난 어떻게 되든 출근하겠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셀카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는 모르지만 눈 상태가 겁날 정도로 심했다.
눈꺼풀, 아니 눈두덩이가 붙어서 아예 떨어지지가 않았고 찝찝해도 닦아낼 무엇이 없었다.
종합 병워은 바쁠 것 같아서 일단 택시를 잡아 타고, 신촌에 있는 연세병원으로 갔다. 병원 일요 담당의사는 안과는 종합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세브란스로 가야했다. 횡단보도에서 택시를 잡는데, 눈이 부우연한 게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고 한쪽 눈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이렇구나 싶게 몸의 균형이 잘 안 잡혔다.
세브란스에 도착, 응급실에 갔다. 그날 따라 안과 진료자가 많아 시간이 두어 시간 걸릴 거라고 했다. 난 안내에 따라 CT촬영을 했다. 촬영을 하려니 귀고리와 목걸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목걸이 고리를 끼기도 힘들었고, 귀고리를 끼는데, 피가 났다. 귀고리를 끼지 않으면 귀 구멍이 그대로 아물기 십상이고 또 귀고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안과 진료를 하려는데 눈꺼풀이 벌어지지가 않았다. 심하게 다쳐서 그랬던 거다. 간호실 쪽으로 전화를 의사 선생님이 넣어서 눈두덩을 식혀야 한다고 했다. 난 두어 시간 동안 얼음팩을 대고 의자에 앉아서 졸다 깨다 했다. 많이 다친 사람(중환자)들에겐 침대가 주어졌지만 나는 그럴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의자에서 얼음팩을 대고 있는 동안 많은 후회가 오고 갔다. 좀 조심했어야 했다는 생각만이 앞섰고, 또 난 다쳐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다친 것도 모른 채 공을 차고 있을 회원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 야속하기도 했다.
너무 지루하고 그리고 아팠다 이렇게 다쳤을 때, 얼음팩을 대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내내했다. (우리 회원님들은 타박상이 있을 시 꼭 얼음찜질을 하세요 흑흑) 의사 선생님은 내게 왜 이제 왔느냐 추궁했다. 난 속으로지만 8시에 다쳤으니 그리 늦은 것은 아닌데, 생각했지만 별 얘기를 할 수는 없었고,
아무튼 눈을 억지로 뜨게 양손가락으로 벌리고 눈을 점검하고, 어렵게 진찰을 받고 나서 게산대에 가니 그 비용은 158,000원. 약을 받으니 약 4시 경이 되었다. 택시를 잡고 집에 와서는 (말이 그렇지 택시도 희미하게 보였다) 내내 잤다. 는게 출근했던 아내가 왔다. 눈을 보더니 놀랬다. 누가 그랬냐? 누가 병원에 갔이 갔냐? 돈은 얼마 들었냐? 가만히 보니 여자가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까지 다쳤는 줄 모를 걸, 아마, 했다. 나는 내일 출근할 일이 까마득했고, 눈두덩이가 붙은 곳이 찐득찐득해서 혼났다. 물티슈가 그렇게 좋은 것인 줄 다치고 나서야 알았다.
출근할 걱정에 아내의 선글라스를 챙겨두었다. 국숫집에서 일하는 나는 손님을 가까이에서 대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일하기 힘들었다는 말은 그만두련다. 다만 자꾸만 눈물 같은 것이 나서 애먹었다는 말은 해야겠다. 그리고 12시간은 길었다. 더 힘든 건, '그러게 힘들게 밤일을 하고는 뭐하러 공차러 가 그래'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누가 그랬냐?(사실, 나는 그 사람 이름도 모르고 그 사람이 정확히 우리 멤버인지도 모르고 있다) 돈은 얼마나 들었냐 하는 것 등이었다.
또 많이 들은 말은 '눈 안 다쳐서 다행이다', '눈 빠질 뻔 했네!' 등이었다.
지금은 멍이 들면서 오른쪽 눈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으려니 한다. 잠을 자면서도 얼음팩으로 덮고 자고 있다. 왜냐? 빨리 나아서 공 차야 하니까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잘난 내 미모를 이른 시일 내에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또, 얼굴을 다치고 보니 면이 선다는 말의 의미도 알것 같으다. 다친 얼굴로 손님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도 잘 차고 내 준수한 외모도 빨리 회복하고 시도 열심히 써야지 다짐해 본다. 아 앞이 보이는 절망 속에서 시 쓰다가 이렇게 아플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역경은 이기라고 있는 것! 나는 다시 성장할 것이다.
(다치기 얼마 전의 내 모습)
초보 축구광! 화이팅!!! 내가 내게 격려와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