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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 부르기

也獸 2013. 5. 3. 19:31

윤관영 부르기

—90년 중반 민작회원이 되었을 때 기이하게 내 이름을 기억하고 살갑게 불러 준 이가 현기영 선생이었다. 신출내기인 나를 기억하고 이름 불러주는 소설가 선생, 미스테리였다. 선생의 소설 「소드방놀이」에서 윤관영은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가닝아! 가닝아!

파동 없이 직방으로

어린 내 귀에 꽂히던 어머니 소리

물속에서 숨을 참듯 사레 들린 몸의 지점에는

날 부르는 소리가 있다

간용아, 니가 엄만테 잘해야 도ㅑ 막내이모 소리

여, 이놈아! 그저 안타까운 아버지 소리

요사이 내 호칭을 잊은 어머니 소리

시멘트 육백 포 내리러 가는 트레일러 속에서 들었다

넘으 돈 묵기가 그리 만만한 줄 아러

가닝이 말고 큰아가 이제사 알아먹은 말

민주아빠… 낯 뜨거운 윤 시인님

'어이, 논술'에 이어

사장까지 왔다 내가 날 검색하면

윤관,만 쳐도 ‘영정’과 ‘장군묘’가 달라붙고

윤관영,을 쳐도 ‘정’이 달라붙는 나

나는 둔해 터져 숨 못 쉬는

죽을 지경이 되어야만

날 부르는 여타 소리를 듣는다

그제야 그 장면이 들린다

 

어떤 때는 내가 날 불러 본다(싱겁게)

여어, 이 놈아(어떤 땐

낯 뜨겁게도 잘 들린다)

 

 

*내가 시를 쓰면서 울 때(아니, 울기라도 한다면) 이처럼 ‘여어, 이 놈아’ 소리가 낯 뜨겁게도 잘 들릴 때가 아닌가 한다.

 

*난 (나도 시인이지만) 시인들이 연작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좀 증오하다시피해 왔다. 그런 내가 피하려다 피하려다 쓴 몇 편의 시가 있는데, 바로 ‘윤관영 부르기’다. 한 두어 편은 연작을 피하려 제목을 바꿨을 뿐이지 윤관영 부르기 연작에 들어가야 마땅했다. 이 시는 윤관영 부르기 스타트인 셈이다.

 

나는 왜, 윤관영을(나도 아닌) 부르게 되었을까? 모든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자가당착>이 아니었을지 싶다. 내가 원하고, 그렇게 안하면 죽을 것 같아서 시골살이를 시작했지만 그곳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예를 들어 시멘트 600포를 내리러 강릉을 간다 치면 가는데 반나절 오는데 반나절이 걸린다. 그 일 자체에 대한 겁도 겁이지만 오가는 시간에 대한 공포도 컸다. 시멘트를 잔뜩 싫어서 느려터진 차에 죄수처럼 실려 가는 나와 타이어의 공기압이 빵빵해 차가 튀어 더 느리게 오는 이 웃지 못할 상황에 돌아볼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분명 불성실한 건 아닌데, 생이 겁날 때, 난 인간이 되어갔던 듯 싶다. 더욱이 생존과 직결된 여러 시도들은 번번이 빗나갔다. 그러한 빗나감은 자괴감을 넘어 내 자신을 향한(자아성찰이니 뭐니 하는 낭만적 감상이 아닌, 내가 아닌 ‘윤관영’에게) 깊은 물음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둔해 터져 숨 못 쉬는 / 죽을 지경이 되어야만 / 날 부르는 여타 소리를 듣는다’고 했던 것은 그냥 사색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실지가 그랬다. ‘사레 들린 몸의 지점’처럼 당하고 겪어야 그 겪음으로 아는 둔한 시인인 셈이다. 내가 @정병근, @전윤호, @이준규 시인을 좋아하는 것도 생의 우수, 그러니까 그 절박함을 잘 견디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워서 이다.

 

나는 지금 죽을 지경에 들지 않으려고, (이 죽을 지경은 아들과 긴밀하므로) 총체적인 긴장 속에서 고도의 성실성으로 이 생에 대해 대적해 나가고 있다. 난, 아직 웃을 때가 아니지만 남의 쓸쓸함도 슬픔도, 울음도 안다. 같이 건너야 할 현재적인 나의 몫도 있다. 페북도 줄기 살기로 하고 있고, 시도 죽기 살기로 쓰고 있다. 모든 악조건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라 믿는다.

 

@정동용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산하 시인이 @현기영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데, 이 근처에서 잘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그건 시에서 보듯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삼촌>에 성과 명이 동일한 <윤관영>이란 이름을 기억하시고 뭔가 나에게 미안한 구석이 있으셨을 현기영 선생님, 열심히 페북을 하는 윤관영 시인의 근황이 궁금한 합정동 근처에 사는 @이산하 시인이 오신 것이다.

 

요즘, 나는, 손님의 사진을 찍어 페북에 올리는 일을 기피하고 있다. 사람에겐 기품이란 것이 있고 아무리 내가 어렵고 절박해도 사진을 찍어서 가게 알리는 일로 손님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믿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졸렬과 수치를 모르는 짓이기에 그렇다. (초기에 난 참 잘못한 것이 많고 겁났던 것도 많았다.) 양해를 해주셔도 미안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현기영 선생님과 @이산하 시인께 사진을 찍겠다고 말씀드렸다. 페북에 올릴 수 있음을 아셨을 것이다.

 

와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현기영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야, 촌놈이 많이 세련되어졌는 걸!”

거두절미, 난 관상이 바뀌는 지점에 있다.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건방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 부대부대사바하^*^ 부자부자사바하^*^

 

-윤관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