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고삐 너머 / 강유환 본문

맘에 드는 시

고삐 너머 / 강유환

也獸 2020. 8. 19. 19:40

심다

강유환

 

 

땅 한 평 없는 내게

우리 집 종자 마늘이 도착했다

마늘통 위 얼비치는 새 촉이

비늘줄기를 밀어 도토도톨하였다

의식을 잃어버리기 전

아홉 쪽으로 잘 벌어진 마늘로

종 하나를 친정해 온 엄마는

푸른 제국의 전정한 통치자였다

허나 공중으로 배달된 종근은

형질 하나의 끝장난 역사다

모계에 기대어 계보를 완성한

우리 집만의 마늘종도 잎 기울기도

유일한 비늘줄기 생김새도 절멸이다

어느 마늘로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제국은 왜 내게 와 멸망하는가

식물의 유구한 역사를 쪼개 내고

껍질 벗기는 데 골몰하였을 때

밭고랑에 넘쳤던 수많은 노래들이

골방으로 몰려와 온몸이 달싹거렸다

대대손손 유전하던 식물의 혼들이

자판 두둑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엄마들에게 뿌리 내린 초록 군단은

신화시대의 기나긴 이야기를 물들이고

산밭 쑥대밭 돌아 나와 칸칸이 나뉜

공중 이랑에 이러구러 종착하였다

 

*강유환 시인, 시집 고삐 너머을 축하드립니다. 사투리가 나온 시가 좋았습니다. 요즘 부모의 투병을 다룬 시가 넘치는데, 동침이 좋았어요. 저만의 편식일 수 있습니다.

시집 출간을 재삼 감축드립니다.

 

 

'맘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서/류성훈  (0) 2020.09.01
아프리카 7 / 정연홍  (0) 2020.08.26
벤딩 엄마/임지은  (0) 2019.07.03
토르소/이장욱  (0) 2019.06.28
문학의 밤/이상국  (0) 201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