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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방수의 몸/윤관영 본문
방수의 몸
만 열네 살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영등포 공구상가 대흥상회(大興商會)에 첫 취직을 했다 나까마 황 씨가 소개했다 먹고자고 한 달에 하루 쉬었다 달삯이 오천원,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꼬마야’로 개명했다 물정 몰랐던 나는 마냥 신기했다 옆 가게 신영상회 종국이와 발끝이 게우 닫는 짐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광장 끝에서 끝으로 달리는 것이 숨은 낙이었다 우리 집 화신쏘니 병풍문 테레비는 내가 사놓은 거다
대흥상회 주인 큰딸 명희는 나와 동갑쟁이였다 떨어질 만하면 호치키스로 찍은 열 장 묶음 학생 회수권을 새침히 내밀었다 그 애는 땋아내린 갈래머리를 흔들며 학교로 가고 난 짐자전거를 몰고 가게로 갔다
한날, 가루무좀약을 적시며 진물이 흘러나오는 발가락으로 나는 쓰레빠를 신고 있었다 부어오른 발등에 밀가루 뿌린 듯한 맨발로 배달 자전거 짐칸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날 할긋 돌아보며 참견했다
총각! 왕소금 넣은 대얏물에 발을 담그고, 아무 무좀약이나 발라
무좀 때문에 찢어진 발가락살이 하얗게 죽은 채 꾸덕꾸덕 일어났다 대야에 발을 집어넣으면 채 녹지 않은 왕소금이 발바닥을 찔렀다 난 왕소금을 발가락 쓰리게 체험한 꼬마였다
영등포 시립병원 공구골목 대흥상회, 선뜻 발가락 오무려 발 집어넣기 꺼려지는 모비루 밴 군복작업복이 내 사춘기를 기름칠한 곳! 이후 난 어지간한 물기 따위는 개가 터럭 털 듯하면 되는 방수의 몸이 되었다
#윤관영 #시에 #방수의_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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