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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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고백/김정임

也獸 2007. 11. 13. 22:19

 

 고백

-김정임

 

 

그대를 생각하는

일 만으로도

팽팽히 당겨지는 마음속 현

 

어느 막다른 가지의

끝에 닿으면 툭 끊어집니다.

 

아픔으로 인한 공명이

전신주를 뛰어다니는 바람처럼

온몸을 떠돌아 윙윙대고

 

상처나고 부러진

생각들의 잔솔가지 긁어모아

그대 보내듯 태우면

 

그래도 타지 못하고 바닥에

뼈처럼 뒹구는 말

 

혀 밑에 사리로 굴렸다가

보낼 수 없어 다시 삼키고 맙니다.

 

 

_

 사랑은 당연한 것을 거부하는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니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못하는 조건과의 싸움이다. 이 시에 의하면 그렇다.

 '그대를 생각하는/일 만으로도/팽팽히 당겨지는 마음속 현'이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어느 막다른 가지의/끝에 닿으면 툭 끊어지게'만드는 사랑 불능이 사랑하지 못하는 조건이 된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의 사랑이니 '팽팽히' 당겨져 긴장을 이룸은 당연할 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어찌 되는가. '아픔으로 인한 공명이/전신주를 뛰어다니는 바람처럼/온몸을 떠돌아 윙윙'댄다. 그래서 화자인 나는 '상처나고 부러진/생각들의 잔솔가지 긁어모아/그대 보내듯 태'운다. 결국은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에 순응한다. 그러나 조건으로 인하여 포기한다고 해도, 그대 보내듯 태워도 사랑은 '타지 못하고 바닥에/뼈처럼 뒹구는 말'로 남으며 화자인 나는 차마 다 태워 보내지는 못하고 '혀 밑에 사리로 굴렸다가/보낼 수 없어 다시 삼키고 만'다.

 아파하고 절망하고, 고뇌하고 - 그 와중에 생긴 것이 바로 더는 축약될 수 없는 '사리'다. 즉, 사랑의 사리.

 그러고 보니 화자는 숨겨진 사람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인데, 그 고백이 아프게 다가온다.

 읽는 나조차 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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