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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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봄밤/이병초

也獸 2007. 11. 21. 08:51

  봄밤/이병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시안>0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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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동또동한 누님은 어떻게 생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난 최근 이병초가 쏟아내는 호남 사투리 일색의 시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이 시만큼은 좋다. 들어가야 할 부분에 그 정서를 대신할만 한, 딱 그 사투리가 들어가서 이 시를 빛내고 있다.

  게다가 시골에 처음 농공단지가 생긴 그 시절을 환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농촌의 풍경을 이래저래 접한 이들에게 이 시는 그래서 각별하게 다가온다. 더우기 사춘기 시절의 그 풍경들.

  "내 고구마 좀 쪄도라!" 너무 노골적이어서 혼난다. 그런데 그의 힘은 질투에서 이런 고함이 나온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를 보면 알 수 있다. 누구와 정분 났다는 사실이 주는 질투와 자신에 대한 연민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어리석지만(대부분 남자가 봐도 날라리 같은 녀석에게 빠지는 속성이 있다는 면에서) 마음이 열리지 않고 몸은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일 끝낸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 그 풍경이 검은 색을 띠지만 밝다.

  내 고구마는 찌지는 말고, 뎁혀만 주라! ('야 이 호박씨덜아' 하고 복수형으로 해서는 안되고) 언제 끓이고 인나! 흑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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