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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_윤제림

也獸 2008. 1. 2. 12:17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윤제림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법 하나는

노래하며 걷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눈물을 훔치며

손목을 잡는 버드나무가 있을라

마침 흰 구름까지 곁에 와 서서

뜨거운 낯이 한껏 더 붉어진 소나무가 있을라

풀 섶을 헤치며 나오는 꽃뱀이 있을라


옛사랑은 고개를 넘어오는

버스의 숨 고르는 소리 하나로도

금강운수 강원여객을 가려낸다

봉양역 기적소리만으로도

안동행 강릉행을 안다


이젠 어디서 마주쳐도 모르지

그런 사람 찾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걸을 일이다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미네르바』겨울호



우연히, TV에서 절대음감을 가졌다는 다섯 살 난 여야를 보게 되었다. 한 번 들으면 그 음을 기억한다는 여자 아이. 눈이 먼 여자 아이. 청음을 하면 그 즉시 피아노를 치는 여자 아이, 딸의 눈에 청강수를 넣던 서편제의 아비가 연상되었다. 몸의 한쪽 기능이 없으면 그 기능이 몸의 다른 곳으로 그 기능이 몰리지만 한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아비. TV에서 아이가 신나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아이가 눈을 뜬다면, 이런 생각이 들자 잠시 혼란에 빠진다.

요즘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기 옆에는 점자가 있다. 그 문양을 유심히 보고 손가락을 대어 본다. 아무런 감촉이 없다. 내가 맹인이라면, 달랐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아직은 그 감지가 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시는 눈 먼 사랑을 해 본 자의 시다. 사람을 기다리는 그 지극한 마음이 절박했기에 ‘옛사랑은 고개를 넘어오는/버스의 숨 고르는 소리 하나로도/금강운수 강원여객을 가려내’고 ‘봉양역 기적소리만으로도/안동행 강릉행을 안’다. 그 구별은 대상에 대한 지독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열망이 빚은 청음이라고나 할까. 그런, 지독한 사랑은 특별히 명명되어질 수 없어 그냥 <옛사랑>이다. 무엇이든 너무 지독하면 그렇다.

그런 사랑을 안고 사는 자는 그것을 희석시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마치 치사량의 독을 문 것 같기에 슬렁슬렁, 딴 짓을 해야 한다. 여기서 화자가 말하는 딴 짓은 ‘노래하며 걷거나/신발을 끌며 느릿느릿/걷는 것이’다. 말로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법’이라 하나, 기실 ‘노래하며 걷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 산책은 사랑을 희석시키며 자신을 달래는 자기반성적 행위이다. 산책이 주는 회억은 현재적 정감을 불러온다. ‘버드나무’와 ‘소나무’와‘꽃뱀’이 불러오는 현재는 옛사랑의 과거 중 일부이기 마련이다.

<옛사랑>은 첫사랑이 아니다. 오래된 사랑도 아니다. 소중하여 명명될 수 없는 사랑이다. 그건 마치 신파와 같아 ‘저를 모르시겠어요’하고 단박에 고꾸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이다. 그러나 그러해 보지 못해 목이 길어진 것을 넘어 귀만 발달했다. 옛사랑은 그래서 라디오를 듣는다, 아니 틀어 놓는다. 딱히 어떤 프로그램을 듣기 위한 채널이 아니고 그것은 산책만큼이나 고정된 습관이다, 옛사랑을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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