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 윤관영

그 자리

 

윤 관 영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한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 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모든것을 까발기는 인터넷 시대에 조금은 답답한 감각인가요? 그러나 사모하는 이를 '마주는 못보고'낯을 붉혀본 사내라면 짐작할 것입니다. '그네'의 온기로부터 생명의 모든 일이 탄생함을. 윤관영(1961~)시인이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이쁜'을 펴냈습니다. 오탁번 한국시인협회장은 이에 대해 "청국장맛, 좀 쉰 찐감자맛, 메주 뜨는 퀴퀴한 냄새가 어우러지면서 번져나가는 파문이 마냥 그윽하다"고 했습니다. 까진 것만이 팔리는 시대에 이렇게 그윽한 시를 만나는 일은 야릇하고도 불경한 기쁨입니다.

지하철 신문 AM7에서 발췌..

 

=위와 같이 카페에서 떠도는 윤관영 시인의 시 '그 자리'는 원문이 아래와 같다. 본래 윤관영의 시 '그 자리'는 현대적 감각으로 쓴 시로서 '~부터'로 이어지는 산문 부분이 절창인데 아마도 길이를 고려하고 일반 독자의 성향에 맞게 2연 부분을 삭제해 편집된 것 같다. 그런 아쉬운 부분을 보충하면서 전문과 리뷰되었던 당시의 단평을 싣는다.

 

 그 자리 外 1편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운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어미닭이 부리로부터 (들었다 놓았다 쉴 새 없던 그 눈동자) 목덜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부터 가슴털로부터 알에 맞춤하게 제 몸무게를 들어올렸을 두 다리로부터 끝없이 옴직거렸을 미주알 그래서 짧았을 꽁지, 그래서 제 몸이 반원을 정확히 그렸을 둥우리로부터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_시선 리뷰작|좋은시
  발칙함이 재미있다. 그녀가 방금 밀어내기 한 판을 뜨겁게 한 변기에 앉아 그녀를 느낀다. 농도가 짙지 않은 야설처럼 야릇하다. 어미닭이 알을 놓으면서 온갖 몸짓을 다하듯이 그녀도 신성한 생리현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생리현상보다 허벅지의 온기, 내장의 체취, 이런 것들에 먼저 미안해진다. 온기가 더 오래 지속된 것을 보니 혹시 변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오래 앉아 손거울을 꺼내 립스틱이라도 칠했을까. 연정을 품은 그녀가 방금 다녀간 반 평 화장실을 은근히 즐긴다. 환기를 시키지 않아도 좋은 듯.
  피묻은 달걀을 말하는데 난 왜 생리대가 떠오를까.
  짓궂은 상상이 즐겁다.
  _05 가을호
  <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