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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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冬至/조용미

也獸 2009. 1. 18. 13:39

冬至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입니다

―『미네르바』가을호

  내 자신이 인간 되어 간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 바로 절기를 따질 때이다. 시골살이라는 것이 날 그렇게 만든 필연이지만, 절기는 시골살이가 부칠 때 더 절박하게 와 닿는다. 당연히 와야 할 비가 안 와서 농사에 지장을 주면 절기에 기대 날씨를 원망하게 된다. 올 가을에는 당연히 와야 할 비가 안 와 송이와 능이 등속의 버섯 작황이 영 말이 아니다. 올해는 겨울나기가 여렵겠다는 말이 나는데 이 모든 것이 절기답지 않은 기후 탓이다.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절기만큼 정확한 것이 없다.

  나에게 절기는 체험의 연속이요 현재적이지만, 이 시는 24절기 중 하나인 ‘冬至’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이다. 화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이 사색의 결과가 깊고 예각적이다. 화자는 지금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생을 거듭한 지금/나는 어디로 가야한’는지, 그리고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이끌려/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다’녀야 하는지 자신에게 되묻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冬至에 대한 해석을 낳은 것인지 동지에 대한 해석이 그런 되물음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 우선순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화자에게 ‘冬至’는 ‘태양이 죽음으로투버 부활하는 날’이자 ‘우레가 땅 속에서/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런 해석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사랑이나 슬픔보다/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가 가져오지 않는가 한다 동지의 그 긴 밤은, 권태의 극은 동지 자체에 대한 사유를 깊게 한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인지,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인 것만은 사실이다.

무료와 권태라 하면 육체적 치열함과는 다른 어떤 요소가 있지만 권태 중에는 치열한 권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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