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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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이후 발표한 시

팬티, 장독에 들다 외 1편

也獸 2009. 9. 21. 18:16

팬티, 장독에 들다 외 1편

윤관영

 

구들돌을 들고 엉거주춤 있을 때, 진득거리는 목장갑을 벗어던지지도 못하고 일을 하지도 못하는 그런 지점에서야 잡히는 장면이 있다

 

빨랫줄에 넌 어머니의 팬티 그림자가 장독 허리에 들어 강속구를 빨아들이는 야구 글러브처럼 속이 깊다 글러브 바깥은 통거리로 반작인다

 

엉거주춤은 코로 사람을 웃게 하는 속성이 있다 새 장갑을 껴 봤자 거푸 진득거릴, 초점이 없는 잠시 잠깐

 

 

 

이즈막,

 

 

이즈막, 지렁이가 예쁘다 물기 반질한 고물거림이, 나의 삽질을 가볍게 한다 그렇다

 

문안골에 산초나무 심으러 가서는 똥을 누고 개울물에 씻고는 뒤집힌 닭똥집 같은 항문을 쥐었던 손으로 묘목을 잘도 심었다

 

어머니와 오디 효소를 담그는데 설탕에 버무린 오디가 애벌레처럼 기는 것 같아서 오디에 녹는 설탕처럼 내가 녹는 것 같았다 … 이렇다

<문학마당>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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