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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고래의 언어/정재분

也獸 2009. 11. 11. 20:09

고래의 언어

                       정재분

 

 

눈이 내리면

눈이 쌓이면

빙하의 나라에 두고 온 벙어리, 또 하나의

나에게서 신호가 온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수억

세포의 메아리 초음파의 자장을 읽다가 문득

휘발 되지 않은 언어

치골 언저리까지 흘러내리면

대양을 건너온 바람이 모여드는 포구로 가서

바다로 데려가 줄 고래를 찾는다

 

찰방찰방 말을 거는 파도 따라온 곳

일 년의 절반은 눈 속에 파묻히는

피오르드, 노르

일 년의 절반은 꽁꽁 어는 포구에서 태어나 선원이 된

고래와 수화 하는 남자의 여자가 되어

바다로 간, 빈자리를 지키며

 

공기가 전하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수억, 세포의 메아리

초음파의 자장을 읽다가 문득

아직은 서성거리는 고향

피오르드, 노르

 

*나는 그렇다. '고래와 수화 하는 여자의 남자가 되어/바다로 간, 빈자리를 지키'고 싶다, 나도. 그 원초의 언어 속에 살며 그 언어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그 근원 속에서 사는 이와 섞이고 싶으다. 그것은 극도의 긴장을 유발하는, 방아쇠를 당기기 바로 전 같은 그런 지점. 그 떨림이 있어야 세포도 열리고 언어도 열린다.

 그러나 그는 서성거린다. 그 서성거림이 아쉽고, 그래서 솔직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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