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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멍에고랑/김종옥

也獸 2009. 11. 20. 20:23

멍에고랑

               김종옥

 

 

밭을 갈던 한씨가 멍에고랑을 어디다 내느냐고 묻는다

멍에고랑이라니? 저 밭도 멍에를 지고 가는 것이 있단 말인가

 

뼈처럼 자갈들이 불거져 있는 저 곳?

곡식보다 풀이 더 성하고

나무들이 느닷없이 들어서는 곳, 저 곳은 어딜까?

 

오늘따라 밭이 호미를 튕겨내며 까탈을 부리고 있다

햇살이 짐승의 발톱처럼 파고드는 오후

군대만 생각하면 오줌을 누고 싶다는 아이의 빨갛게 익은 목덜미가

아! 텅이 빠져 반질거리던 그 소의 목덜미 같아

등에 멍에를 얹고 마당을 나서면 들판이 부스스 일어서고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빛 속으로 느릿느릿 사라지던 아버지

 

풀을 메고 돌아서 보니 이랑이 하얗게 말라 간다

감자 너머 고추 너머 고구마 너머 저 멍에고랑에는

무슨 씨앗을 넣어야 할까?

굵고 거친 씨앗들을 촘촘 넣어야 하리

그것들이 밭을 시퍼렇게 덮고 함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것들을 막는 동안,

가시덩굴 같은 것들이 불쑥 덮치기도 하는

 

여름이 오고 있다

 

*시는 이미지다 '털이 빠져 반질거리던 그 소의 목덜미'라는 구절이 날 사로 잡는다. 멍에고랑도 마찬가지. 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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