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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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유경희 시인의 [내가 침묵이었을 때]

也獸 2016. 4. 30. 20:15

 

북한강

       유경희

 

 

강물이 시작되는 곳에서

강물이 끝나는 곳까지의 여행이었다

산소와 녹음을 떠나 잿빛 하늘빛으로의 이주

이젠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는다

빗방울이 눈송이가 안개방울들이

바다에 가까이 오니 물결이 잔잔하다

나를 잃게 되겠지만 평화를 입게 되겠지

몇 세기쯤 대양을 뒤척이다가

나무의 몸에서 한 세기쯤 자고

투명한 몸으로 자유를 살다가

산소와 녹음뿐인 그 골짜기에

한 방울 비로 내리는 꿈

 

 

마을 묘지

           유경희

 

 

마을 묘지 앞 카페 야외 테이블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남자가 하나 앉아 있다

저런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이 마을에 그냥 눌러앉아 버리는 상상을 한다

아이를 낳고 양떼를 몰고 삼백 년쯤 지나면

피가 점점 묽어지다가

나라는 존재는 사라져가겠지

먼 옛날 티베트의 핏속으로 녹아들었던 기억처럼

 

 

 유경희 시인의 처녀시집 『내가 침묵이었을 때』를 읽었다.

 

 시가 지나치게 길고, 산문적이어서, 또 지나치게 어려워서,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아니 아예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시절에 유경희 시인의 시집 『내가 침묵이었을 때』는 한 미덕을 가진다. 시가 짧고, 쉽다는 것도 한 개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 「마을 묘지」는 예전에 좋은 느낌으로 본 시다. 지금 보아도 좋다. 솔직한 고백에 솔직한 염원이 잔잔하고 그래서 그 염원이 욕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세월에 기대었기에 (‘삼백 년쯤’) 그러리라.

 

 시 「북한강」도 「마을 묘지」의 기운을 가진 시다. 강물이, (그 이전에 빗방울, 눈송이, 안개방울이었지만) 바닷물이 되면서 자신이 소멸되고 다시 재생되는 그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유경희 시는 밝은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죽음에 대한 전제가 항상 먼저 되어 있다. 그의 시에서 죽음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 것은 아마 밝은 척, 혹은 다른 얘기로 그것을 희석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면에 부각시키기를 계면쩍어하는 어떤 기운이 그에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느낀다.

 

유경희 시인은 그 촉발을 ‘상상한다.’ ‘꿈’이란 말로 대단치 않게 말한다. 왜? 그것은 대단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몇 세가, 혹은 삼백 년쯤이나 되어야 이룰 꿈이라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난 좋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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