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독새끼/윤관영 본문

두 번째 시집 이후 발표한 시

독새끼/윤관영

也獸 2024. 4. 6. 09:31

독새끼

 

 

독에서 태어났다 거무벌건

대낮에 독을 깨고 나왔다

 

태어날 때 내 울음소리는 독 깨지는 소리보다 컸다 내 울음소리에 내가 놀랠 지경이었다 그날은 술래잡기하던 날이었다 엉뚱깽뚱했던 나는 야트막한 부단지를 밟고 독의 뚜껑을 연 후, 그 속에 들어가 숨었다 뚜껑을 닫은, 그 캄캄칠야 속에서 놀래킬 마음이 컸던 나는, 마른 메주와 그 위에 깐 짚가시랭이 위에서 꼬치오뎅처럼 몸을 접고는 고새 잤다 다리가 저린 순간 칠흑의 어둠에 와락 식겁한 나는 오금을 펴면서 그대로 독과 함께 넘어졌다 머리와 손, 무릎이 피칠갑이었다 밭일 하시던 어머니가 달려오셨고 나는 뭔지 모를 겁에 그악스레 울었다 메주 냄새가 살을 파고 들었다 그런 나를 동무들은 독새끼라 불렀다

 

안적껏 막내이모는 나를 보면 웃고는 한다

간용이가 쪼까 유달르기사 했제

나는 열 살 줄어 독생자로 다시 태어났고

사금파릴 알발로 뭉개버린 겁대가리 금이 간

독새끼 시인이 되었다

 

 

시와세계신작소시집 202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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